이제 내 편을 들겠다

by 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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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2일, 금요일. (날씨: 양떼가 하늘 목장에 모였다.)

(누가/무엇) 1. 딸 친구가 쪽지를 받았다.

(내용/의미) 2. 쪽지 안에는 나쁜 말이 가득하다. 쪽지만 남고, 쪽지를 쓴 사람은 꼭꼭 숨었다.

(생각/감정) 3. 거 참, 친구 사귀기 어렵다.


<확장 글>


직장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딸이 나를 보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딸은 학교에서 생긴 일을 들려주었다. 딸과 같은 반에서 지내는 진우(가명)가 나쁜 말이 적힌 쪽지를 받았단다. 진우 필통에서 “너는 죽어야 해” 라고 적힌 쪽지가 발견됐는데, 글은 쓴 사람이 없어서 반 친구 모두 선생님께 크게 혼났다. 딸은 선생님께서 상황에 따라 학교폭력위원회가 소집되거나 경찰서에 신고할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본인이 하지 않았지만, 겁나고 불편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진우를 안다. 진우는 딸과 초등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4년간 쭉 같은 반에서 지낸다. 나는 딸이 1학년 때 학부모 상담에 갔는데, 학급에서 유독 한 책상이 눈에 띄었다. 쉬는 시간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책상 위가 너저분했다. 바로 진우 자리였고, 그때 선생님께 진우 얘기를 처음 들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진우는 ‘느린 아이’라고 소개해주셨다. 그때부터 난 진우에게 관심이 갔다.

“엄마는 진우 편이야!” 나는 딸 이야기를 듣고 진우 편을 들었다. 아니 사실, 내 편을 들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부터 학창 시절 내내 느리고, 겉돌았다. 공부는 어렵고, 선생님은 부담스럽고, 친구를 사귀려니 훨씬 더 힘들었다. 매일 학교에 가기 싫었지만, 꾸역꾸역 학교에 갔다. 긴 터널을 지나 어른이 되니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서 너무 좋았다. 뭐든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면 되니까 사람들과 지낼 때도 내가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관계를 맺으면 안전하다고 느꼈다. 이제는 사회생활을 오래 해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가면도 제법 잘 꺼내쓴다.


내 고민을 하나 더 꺼내면, 최근 직장에서 한 동료가 나를 싫어한다. 어떤 이유로 내가 못마땅한지 모르겠지만, 대놓고 나를 피한다. 그동안 쭉 편하게 지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니 당혹스럽고, 한편으로 속상했다. 나는 다른 동료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니 신경 쓰지 말자며 스스로 다독였는데, 학창 시절 친구들 틈에 섞이지 못하고 뱅뱅 돌던 내가 자꾸 보였다. 꽁꽁 잘 숨겨두었던 상처가 발갛게 드러난 듯 아팠다. 며칠 동안 신경을 너무 썼더니 꿈에서도 반복해서 그 동료를 만났다. 상황도 피곤하지만, 쿨하지 못한 나에게 더 짜증났다.


친구와 다투고 고민하는 아이처럼 며칠을 고민했다. 메시지를 보내볼까? 밥이라도 먹자고 말해볼까? 아니면 오가며 만났을 때 가볍게 말을 걸어볼까? 여러 모로 생각하고 불편한 대로 그냥 두기로 했다. 마음을 정하니까 어느 정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사람들과 지낼 때 불편한 분위기가 싫어서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사과하고 상황을 넘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 딸 아이 친구 진우 편을 들었듯, 스스로 내 편을 들고 싶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고, 나 또한 모든 사람에게 잘할 수 없다. 그러니 나한테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마음을 더 쓰며 살련다. 글을 마치며, 남은 감정 찌꺼기를 툭툭 털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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