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밝은 빛을 보고자 한다면

by 스틸노트


[겨를]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라는 뜻.


지난 며칠은 그야말로 겨를이 없었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자꾸만 밀려났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 사이에서 생긴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었다. 꼬인 실타래를 붙잡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마음은 지치고, 머리가 무거워졌다.


에너지가 유한할 때는 균형 있는 분배가 필수다. 그런데 계속해서 힘이 새어 나가는 느낌이었다. 새는 구멍을 막고, 흐름을 바로잡아야 했다. 흩어진 에너지를 모아 내게 가장 중요한 대상인 남편과 아이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흘러가게 해야 했다.


나는 진정으로 문제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고 싶었다. 고통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고통 앞에 마주 서기로 했다. 외면하고 돌아설지, 정면으로 뚫고 지나갈지 선택해야 했다. 선택에 따라 상황은 변화한다. 그 변화로 인한 앞으로의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걸 받아들였을 때 결정은 이루어진다.


나는 웬만하면 갈등을 피하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참고 넘기려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선택이 나를 위한 최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었다. 참고 넘기지 않고, 분명하고도 정중하게 나의 요구를 전달하기로 했다.


선택한 것을 행동에 옮기고 나니 예상보다 훨씬 후련했다. 이게 옳은 선택이었단 걸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고통을 뚫겠다 마음먹은 순간, 이미 내 안에는 작은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빛은 점점 커져, 태양처럼 환하게 빛났다.


연기처럼 머릿속을 가득 메운 고민, 고통, 절망, 괴로움, 두려움 같던 것들이 순식간에 밀려나고 빛이 그 자리를 채웠다. 역시 시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게 낫다. 대부분 ‘하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더 깊은 법이기에, 나는 ‘행동하는 쪽’을 택했다. 힘겨운 고통을 끝내기 위한 방법은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음을. 며칠의 고통을 밀도 있게 겪어낸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절망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정당화시키려는 진지한 시도가 만들어 낸 결과다. 절망은 삶을 덕망과 정의와 이성으로 살아가고, 책임을 완수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한 결과로 생겨난다.”
_<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는 그리고 말한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가 주관적인 체험이나 상황을 지나치게 객관화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스스로 규정한 사회적 이치, 정의, 책임을 지키려 노력하다 보면 절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다만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고,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를 선명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던 절망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다시 밝은 빛을 보고자 한다면
슬픔과 절망을 뚫고 나아가야만 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볼 ‘겨를’을 되찾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고통이 반복되고, 선택을 거듭할수록 보다 성숙한 선택을 하게 되기를. 흔들림 앞에서 단단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더 당당해지기를. 그리하여 결국 빛 안에 머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