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세상 속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by 스틸노트


어느새 글쓰기 모임도 마지막 주에 다다랐다. 일상과 함께 글 한 편을 완성하는 시간에 몰입하다 보니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지. 모임 속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반대로 아이 세상 속 시간은 또 다르게 흐르는 것 같다. 아이들은 일을 전환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한 번 말하면 바로 듣지 않는다.


오늘 등원길에는 감기약으로 실랑이를 했다. 아침밥을 겨우 먹이고, 다음은 약 먹을 차례. 하지만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져 약통을 손에 들고 일단 차에 올라탔다.


아이는 오랜만에 비가 와서인지 창밖을 구경하느라 손에 약통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나는 운전을 하는 틈틈이 백미러를 통해 뒤에 앉은 아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어린이집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조급해져 약을 먹으라는 말을 열 번도 넘게 반복했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자 보란 듯이 카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결국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까지 약을 하나도 먹지 않은 아이. 원래 혼자서도 약을 잘 먹는 아이였는데, 엄마가 뒷자리로 와서 직접 먹여주니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서 꿀떡꿀떡 잘도 받아먹는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2층에 있는 반까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눈을 쳐다보며 찡긋 눈웃음을 보여준다. 만족한다는 듯이. 오늘은 엄마의 다정한 손길이 필요한 날이었나 보다.


아이는 신발장에서도 한참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 후에야 자신의 신발을 신곤 한다. 기다리는 내 속은 많이 답답해진다. 어떨 땐 장난처럼 아이 눈앞을 막아서서 시야를 차단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아이의 눈동자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


“이건 아이의 세상인데..”


아이는 아이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내가 나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고작 세상에 태어난 지 2년이 조금 넘은 아이에게 세상은 새롭고 호기심 가득한 것들이 넘쳐 난다. 매일 같은 등하원길이라도, 마주치는 사람들, 다른 친구나 언니오빠의 행동, 그들의 대화는 늘 새로운 것이다.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탐색하는 아이의 시선을 차단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얼마나 궁금하고 흥미로우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잠시 잊어버리면서까지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이의 시간은 느리지만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언제나 챙겨야 할 일이 많은 어른들의 세상은 그보다 몇 배는 빠르다. 아이는 그저 약을 먹는 것, 신발을 신는 것, 집에 가는 것처럼 단순하다. 당연히 속도가 빠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아이의 세상을 잘 모르는 것처럼 아이도 어른들의 세상을 알기 어렵다.


그러니 천천히 세상을 음미하는 아이의 속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아이는 아마 앞으로도 아이의 속도대로 행동할 것이다. 좀 더 자라서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속도는 점점 빨라질 테다. 그때까진 내가 시간을 여유 있게 앞당겨서 움직이는 게 지혜롭다.


아이는 아이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