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화란

by 스틸노트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이란 사실 상대가 스스로의 감정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들어주고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일이란 그렇게 상대가 멈춘 지점을 알아채고 그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다.”
_<사람을 남기는 사람>, 정지우


예전부터 주변 지인들로부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을 잘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공감 능력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기보다 타고난 기질 같은 것이었다. 다만 공감을 상대가 느낄 수 있게 전하는 일은 노력의 영역이다.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흥미롭고, 특히나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일은 너무나 귀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기다 보면 이야기를 듣다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놀라거나 슬픈 표정을 짓거나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것, 손뼉 치며 기뻐하듯 흥분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아이와의 대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타난다. 아이의 마음을 가능하면 제대로 읽어주기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가 하는 말에 표정과 제스처로 반응하고서,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묻곤 한다.


이를 테면, 아이가 “채채 오늘 비 봤어.”라고 말을 꺼냈다면, ”채채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창문을 열고 친구들이랑 비가 오는 걸 지켜봤구나. 마음이 차분해졌겠다. 천둥 번개가 쳐서 무섭지 않았어?“와 같이 답한다.


그러다 내가 잘못 이해했을 때면, 아이는 조금 더 설명을 덧붙여 엄마를 이해시킨다. 나는 아이가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재해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이 이해하고 되묻는 과정을 반복하며 아이가 말하려는 의도와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냈을 때의 만족감이란!


역시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직접 묻는 것이 제일이다. 우리는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 상대를 해석할 수밖에 없기에 완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발생한다. 그러니 곡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질문을 통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 이해하고 되물어야 한다.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를 이겨낸 결과이다. 하나는 자기 방어를 이겨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이겨낸 것이다.”
_<사람을 남기는 사람>, 정지우


남편과 평소 이야기를 자주 하지만, 속 깊은 이야기는 따로 시간을 만들 때에야 이루어지곤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부터는 그런 시간을 갖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보통은 홀로 꽁꽁 싸매고 있다가 감당이 안되어 결국 균열이 생겨버리고서야 그런 시간을 갖는다. 그러니 먼저 어떻게든 대화 시간을 확보했다면, ‘좋은 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궁리해봐야 한다.


속 깊은 대화의 시간을 회고해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게 있었는데 표현하지 않아 쌓인 오해들로 상처를 받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불편한 부분을 말하지 않고 참다가 폭발하기도 한다. 부부니까 상대가 당연히 이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생각하는 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다.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앞으로도, 마주치는 갈등과 극복을 통해 상대를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 부부에게 주어진 평생의 과제이자 사랑의 목적이다.


늘 같은 문제로 다투고 상처받아도, 아무리 서로의 가치관 차이로 부딪히고 서로를 힘들게 해도 또다시 대화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싸워도 우리가 헤어질 일은 없다는 믿음, 우리가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고, 아이와 가정이라는 지켜야 할 대상이 있으며, 서로 맞추고 양보하여 더 나은 방향을 도모하고 싶은 마음, 함께 오랜 미래를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인생의 어느 시점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그 시점을 잘 견뎌내고, 슬기롭게 극복해 낸다면,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슬픈 날이 있으면 기쁜 날도 있는 법이기에. 무너지지 않고 그 시기를 잘 지나가기만을 손을 잡고 함께 기다릴 뿐이다.




좋은 대화를 했다는 것은, 대화가 끝나고 대화 상대와 헤어져 돌아가는 길에 분명히 알게 된다.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다면, 이대로 끝내기 아쉬워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된다면 좋은 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반대로 대화 후 남는 것 없이, 불편하고 왠지 모를 찝찝한 마음과 불쾌함 같은 감정만이 남는다거나, 다시는 그와의 만남을 갖고 싶지 않다는 마음조차 들 때면 좋은 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아마도 좋은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나와 상대가 모두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상대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믿음과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에게 있으면 성립되는 것 같다. 그러니 그런 믿음이 없이 상대와 좋은 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다른 말로는, 그런 믿음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면 좋은 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만나는 인연들과의 좋은 대화를 꿈꾸며, 나 또한 상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믿음과 대화의 즐거움을 남길 수 있도록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