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록들에서 찾는 의미

불렛저널 회고

by 스틸노트


나의 1년은 무엇으로 채워졌는가.


불렛저널을 시작하게 된 건 지난 3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였다. 집안과 아이를 동시에 돌보는 일은 챙겨야 할 것들로 가득했다. 너무 많은 걸 쥐고 있느라 자꾸만 하나씩 놓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자책하고 아쉬워하곤 했다. 할 일들을 기억 속에 붙잡고 있느라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어질러진 머릿속을 정리해서 통제하는 감각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노트에 챙겨야 할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형식도 없이, 작은 점이 900개가 넘게 박힌 페이지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채워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써 나갔던 첫 달이 떠오른다. 컬렉션을 만들어놓고 다 채우지 못한 채 넘어갔던 달, 별다른 컬렉션 없이 생각날 때마다 하루 일과를 기록하는 것만으로 채우던 달도 있었다.


다이어리를 멋지고 감각적으로 꾸미는 데는 솜씨가 없어서 일단 기록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가끔 레퍼런스를 참고해 조금씩 가꾸어 나가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모르던 감각을 발견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매달 집중하고 싶은 주제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에너지를 주로 쓰고 있는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단 몇 시간만이라도 깊이 들여다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며, 어떤 것을 지키고 싶은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기도 했다.


11월부터는 매일 저녁마다 한 페이지 전체를 데일리로그로 채우면서 그날의 생각을 더 깊고 디테일하게 담아내고 있다. 오늘자 데일리로그에 12월이라는 숫자를 쓰면서 지난 한 해 동안 무엇이 남았는지 떠올리게 됐다. 사실 돌아보면 매일 똑같은 루틴과 취미가 전부라 특별할 게 없어 보여 처음엔 회의감이 들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내가 해오던 일이 전부 의미 없는 행위였을까?”


그건 절대 아니었다. 내겐 그간의 기록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버젓이 남아 있었다. 기록은 행위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나의 일상을 기록한다는 건, 스스로를 지키고 돌보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내게 기록생활은 시간의 흔적이다. 육아와 살림은 어무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더라도 티가 잘 나지 않기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 들곤 한다. 하지만 별것 아닌 일상도 기록 안에서 ‘의미’가 된다. 글쓰기로 연결하면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기록을 통한 작은 성취는 매일의 나를 붙들어주는 힘이 된다. 홀로 하루를 보낼 때는 든든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되고, 사람들과의 만남 후에는 더 풍성한 페이지로 채워진다. 나의 지난 기록들은 기쁨, 감동, 슬픔, 절망, 후회,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로 다채롭게 채워져 있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 팝콘처럼 통통 튀는 순간들이 함께였다. 불렛저널을 손에 쥐고 있으면 활짝 핀 꽃을 한 아름 품에 안고 있는 듯한 기쁨이 느껴진다.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의미 없던 순간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이젠 쓰지 못하고 건너뛴 날조차 내게 의미로 다가온다. 하루 쉬었다고 자책하지 않고, 충분히 채우며 회복하는 시간으로 여길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채워진 힘으로 더 강하고 활기차게 가족과 집안을 돌본다.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깊게 새긴 과거의 흔적이 오늘과 미래의 지혜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또한 머릿속에 붙들고 있던 것을 기록해 두면, 기억하느라 애쓰던 에너지를 다른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의미로 가득 찼던 한 해. 남은 한 달도 의미를 만드는 기록생활을 이어가 보겠다. 기록과 함께 성장할 내 모습을 기대하며. Joy!


이 글을 읽는 모두의 일상이 따스한 연말로 기록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