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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10. 2023

권여선 <각각의 계절> 중 '사슴벌레식 문답' 리뷰

샛별BOOK연구소

'나의 새끼 오리 친구들' 


<사슴벌레식 문답> 중 '사슴벌레식 문답', 권여선, 문학동네, 2023. 


  준희에게 정원의 이십 주기 추모식은 중요한 날이다. 준희는 부영과 경애를 초청해 단톡방을 만들어본다. 예상과 달리 경애는 바로 단톡방을 나가고, 부영은 글을 읽지 않는다. 준희는 정원의 추모식에 혼자 다녀오며 속상해한다. 준희에게 부영, 경애, 정원은  '나의 새끼 오리 친구들'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어쩌다 우리 관계가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준희는 30년 전 경애 생일파티를 위해 강촌에 놀러 가 고기를 구워 먹던  추억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숙소에서 정원과 나눴던 '사슴벌레식 문답'을 소환한다. 


  강촌 숙소 방에 사슴벌레가 들어와 놀란 정원은 주인아주머니에게 말했더니 봉지에 유인에서 치우라고 일러준다. 정원은 방충망도 있는데 어떻게 사슴벌레가 들어오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어디로든 들어와'(p.21) 하며 득도한 듯 말하고 가버린다. 준희와 정원은 이때부터 아주머니의 말투를 따라 대답을 꾸며본다. 이를테면 '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나 어떻게든 그렇게 잔인해?' (...)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p.21)처럼 답을 할 때 ''을 붙여본다. 정원과 준희는 이런 답변을 두고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p.22)이라고 정했다. 대답에 '든'을 붙이면 왠지 모르게 의젓한 말투처럼 들리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냐고 물으면 인간은 무엇이'든' 살아라고 답할 때 준희는 '저 흐르는 강물처럼 의연한 사슴벌레의 말투만을 물려'(p.22)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오늘 정원의 기일이다. 정원은 서른일곱에 자살했는데 '나의 새끼 오리 친구들'인 경애와 준희는 추모식에 오지 않았다. 준희는 부영과 경애를 향해 원망을 마음을 쏟아본다. 어떻게 정원의 추모식에 오지 않을 수 있는지. 부영이 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지... 준희는 분통이 터지고 씁쓸하다. 그러면서 정원과 교감했던 문답을 곱씹어 본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p.28)라고 답하자 준희는 화들짝 놀란다. 지금까지 사슴벌레식 문답이 의젓한 말투인 줄 알았는데 '사슴벌레의 말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p.29)가 숨겨져 있었던 건가. 어쩔래라니... 사슴벌레식 문답에 '든'은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p.29)이 도사리고 있었구나 짐작해 본다. 이 한글자가 의연한 '든'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잔인한 '든'처럼 들렸다.  


  준희는 납득이 안 된다. 경애가 어떻게 부영의 남편인 곽두진에게 그럴 수 있었는지, 경애의 진술로 곽두진은 감옥에 가고, 부영은 충격으로 뇌출혈 수술을 받고 일주일 넘게 깨어나지도 못했는데도 경애는 왜 미안해하지 않는지, 경애는 교수자리를 지키려고 친구를 배신하고, 변절을 할 수 있었는지. 경애는 경찰 조사에서 곽두진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는지. 자신도 연루됐으면서 곽두진이 교시를 받는 걸 목격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준희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종북 프레임에 경애는 자신만 빠져나갔다. 부영을 풍비박산을 만들어 놓고. 그러면서 경애는 이런다. 자신은 팩트만 말했고, 부영에게 미안하지도 않고, 이제 그만 전화하고 찾아오지 말라고...  준희는 술에 취해 사슴벌레처럼 말하는 경애를 상상해 본다. 


"야, 너 나한테, 두진씨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부영아, 나 너한테든 두진씨한테든 미안하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어떻게든 미안하지 않아."

"너 어떻게 이러냐? 니가 어떻게 이래?" 

"나 어떻게든 이래. 내가 어떻게든 이래. (p.35)


  부영이 묻고 경애가 답하는 사슴벌레식 문답을 생각하며 준희는 이런 경애를 끔찍해한다. 친구 남편을 감옥에 팔 년씩이나 갇히게 하고 어떻게 경애는 치아교정을 하고, 교수자리를 지키고, 무슨 법사를 만나고, 포럼에 다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나'(p.36)라고 말이다. 아!! 사슴벌레식 문답에는 두 얼굴이 있었다. 의연하지만, 잔인한 사슴벌레가 공존했던 것이다. 인간의 두 얼굴처럼 말이다. 아니 경애의 두 얼굴처럼. 


  준희는 술을 마시며 다시 생각해 본다. 준희는 최대한 경애의 편에 서서 사슴벌레식 문답을 다시 해본다. 어쩌면 경애는 감당하기 힘들고 두려웠을지 모른다. 경애야 너 어떻게 이러니. 네가 어떻게 이래?라고 물으면 경애가 이렇게 대답했을까. "나 어떻게든 이래. 내가 어떻게든 이래.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p.37). 준희는 경애의 마음을 좀 더 부여잡는다. '준희야 다 지난 일이고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어디로든 들어왔는데 나가는 곳을 몰라.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막막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경애의 편에서 애써본다. 


  그렇다면 사슴벌레식 문답은 세 가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슴벌레는 의연하지만, 잔인하고, 두려운 얼굴이 공존한다는 것. 사슴벌레가 말하는 '든'에는 두려움의 표식도 숨겨져 있다는 것. 강촌 민박집 방에 들어왔던 사슴벌레도 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고 발버둥 치며 두려웠을 것이다. 경애도 사슴벌레처럼 그때 버둥거리며 출구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경애는 친구 남편이자 동지였던 곽두진을 배신했지만 팩트를 말했다고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그것이 경애가 버둥거리며 빠져나갈 방법이지 않았을까. 


  사슴벌레에게 세 가지 얼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준희는 이제야 경애의 입장을 헤아려본다. 30년 전 강촌에서 경애가 잠을 못 자며 관계를 모두 끊고 싶다고 했던 상태를. 늘 불안해했던 경애의 마음을. 이미 엎질러진 물을 쓸어 담을 수도 없는데, 준희는 경애에게 예전의 경애로 돌아오라고 폭력을 휘둘렀다. 준희는 부영에게도 마찬가지다. 자꾸 경애의 소식을 부영에게 전해주며 부영의 속을 훑어버린다. 남편과 힘들게 견디고 있는 부영에게 준희는 미운 새끼 오리처럼 어리광을 부린다. 하숙방에서 술을 먹고 자신의 외로움을 친구들에게 생채기 냈던 그때를 계속 재현했는지 모른다. 


  술에서 깨어난 준희는 자신이 비참해진다. '입술로는 경애를 용서하라며 이로는 경애를 물어뜯는 내가. 그러면서 동시에 부영까지 가차 없이 물어뜯는 내가.'(p.40) 하찮아진다. 준희는 이런 자신이 소스라쳐지며 부영과도 이제 끝났구나 생각한다. 준희는 경애와 부영에게 하숙집에 모여 살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준희는 어쩌다 자신이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술에 취해 앞니를 깨먹고 부영과 경애에게 미움을 쏟아부은 자신이 창피하다. 자신도 사슴벌레처럼 그 옛 기억 속에 갇혀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내년 이맘때면 정원이 죽은 지 21년이 될 것이다. 준희는 또다시 부영과 경애를 단톡방에 불러 소환할 것인가. 부영은  더 이상 경애의 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했다. 아마도 준희는 내년에는 단톡방을 만들지 않고, 조용히 혼자 다녀올 것이다. 준희는 이제야 비로소 부영과 경애를 알 거 같다. 자신은 하숙생 시절 우정이라는 이름하에 '즐거웠던 추억으로만 채색하려 애써'(p.42) 왔던 것이다. 30년 동안 인간은 변할 수 있고, 자신만의 사정이 있으며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직시하지 못했다.


  준희는 30년 전 그 기억 속에 갇혀 친구들에게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친구들은 답한다. '준희야, 어떻게든 그럴 수 있어'. 준희는 긴 터널에서 나올 수 있을까. 갇힌 기억 속에 웅크린 자신을 발견했으니 부영의 말대로 준희도 힘을 내서 잘 살아갈까. 더 이상 술을 먹고 앞니가 부러지는 일이 없이 지낼까. 준희는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제 3자인 자신도 아픈데 당사자인 경애와 부영은 어떤 시간을 살았을까. 타자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경애도 견디며 살고 있고, 부영도 견디고 살고 있고, 우리 모두는 견디며 살고 있다는걸... 정원이 가르쳐준다. 사슴벌레식 문답으로. 


'나의 새끼 오리 친구들' 안녕. 



<각각의 계절> 토론

https://blog.naver.com/bhhmother/223131807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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