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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16. 2023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BOOK리뷰

샛별BOOK연구소

사회과학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동아시아, 2017, 305쪽 분량.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쓴 김승섭 교수는 보석 같은 학자다. 의학을 전공후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저자는 공중보건 학자로서 그동안 고뇌했던 기록을 쉽게 풀었다. 몸이 아프면 본인 탓일까. 우리는 대부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교수는 병에 걸린 이유가 개인적 책임이 아닌 사회적 책임일 수 있다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게 한다. 보통 질병은 '식습관, 행동, 심리, 유전적 요인' 등으로 발생한다고 아는데 저자는 아니란다. 사회에서 받은 혐오, 차별, 고용불안 등이 개인에게 상처를 줘 병이 생겼다는 논리다. 이를 전문용어로 '사회역학'이라고 부른다. 사회역학은 질병이 생긴 이유가 사회에 원인이 없는지 조사하는 학문이다. 




김승섭 교수는 질병을 발생시키는 '원인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 학교, 직장, 지역사회 같은 공동체의 특성이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이란다. 폐암을 예시로 든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폐암에 걸렸다면 담배를 피워서 걸렸다고 즉각적인 생각을 한다. 왜 우리는 질병의 원인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고려할까. 그가 폐암에 걸린 이유가 담배를 피우는 것 말고 사회적, 정치적, 역사, 권력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병에 걸린 원인에는 '현상 너머'(p.71) 무언가 작동하는 존재가 있단다. 


1960년 미국의 제당업계가 하버드 과학자 세명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며 투고 전에 논문 초고를 검토 받았다는 사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자살로 내몬 '쌍용자동차의 비극'(p.98), 캘리포니아의 IBM공장에서 화학물질 부작용으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데이터를 내놓은 리처드 클랩 교수에게 가한 횡포 등을 보면 질병이 한 개인에게 있지 않음을 명시한다. 클랩 교수는  왜 이런 일을 하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고 답했다. 학자의 윤리성을 떠올리는 말이다. 


클랩 교수를 만나고 김승섭 교수 또한 '그들'편에 서서 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직업환경, 세월호 사건에서 생존한 학생들 실태조사,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 교도소 재소자 인권과 정신건강 연구, 트랜스젠더 A 씨의 군 입대 관련 자문, 가습기 살균 피해 사건, 국제결혼이민자 차별조사 등을 연구/기록했다. 


“재난은 기록되어야 한다”(p.160)며  사각지대, 소외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질병을 연구하며 아픔이 기록되면 길이 있다고 주장한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저자는 조금은 이기심을 뛰어넘고 삶을 살자고 말한다. 또 기회가 있다면 시위를 진압했던 전경들의 고통을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연구자. 교수님의 행보에 큰 응원의 함성을 보탠다.  


발췌


크리거 교수는 그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왜 사람들은 그 ‘원인의 그물망’ 이 마치 처음부터 주어진 것인 양 생각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은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인데도, 왜 질병의 원인을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유전적 요소인 가족력조차도 환경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데, 질병의 원인을 개별적으로 개인 차원에서만 고려할 때 우리가 놓치는 점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지요. 어떤 이가 박테리아에 노출되어 결핵에 걸리고, 또 다른 이가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린다고 이야기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p.57~58)


그물망처럼 얽힌 여러 원인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아프다면, 그 그물망을 만든 거미는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 그물망을 엮어낸 역사와 권력과 정치에 대해 물어야 하고, 좀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고 크리거 교수는 말합니다.(p.58)


-저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흡연과 벤젠 노출처럼,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가설을 탐구합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입니다. (p.6)


 -크리거 교수의 논문 등을 계기로, 1990년대 후반 역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촉발됩니다. ‘역학 전쟁 The Epidemiology Wars’이라고도 불렸던 그 논쟁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 학교, 직장, 지역사회와 같은 공동체의 특성에서 찾는 연구자들이 모였습니다. 개인의 나이와 가족력과 생활 습관에 대해서만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가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도 질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특성은 모두 질병이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존의 건강 연구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가 개인적 요소들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고 그런 연구들로 인해 질병 위험의 개인화 경향은 점점 강화되었던 것입니다. (p.59)  


우리가 인간을 개개인으로만 바라볼 때 그런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거대한 혁신을 이뤄낸 현대의학으로도 알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병원을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 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 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p.71) 


-더 이상 흡연이 건강에 나쁘지 않다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자, 담배회사들은 이전과 다른 전략을 취합니다. 흡연이 아닌 스트레스를 암과 심장병의 원인으로 부각하고자 한 것이지요. 담배회사들은 여론의 흐름을 만들고자 셀리에 박사 연구에 돈을 지원하고, 박사는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논문을 출판합니다. 법정에서 그 연구들은 담배회사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근거로 이용되었습니다. (p.78)


-1960년대 미국의 제당업계에서 설탕과 심장병 사이의 연관성을 감추기 위해서, 하버드의 과학자 세 명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며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심장병의 원인이라고 밝히는 문헌고찰 연구를 1967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출판하게 한 것이다. (...) 지난 50여 년을 돌이켜보면, 설탕을 위험하지 않은 물질로 만들고자 했던 제당업계의 전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그 위험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섭취했던 설탕은 얼마만큼이었을까요(...)


 -이러한 연구를 둘러싼 비윤리적 행위들은 과학 일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왜 저런 논문을 썼지? 또 어디에서 돈 받은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이는 과학 연구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음모론을 싹트게 하는 토양이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합리적 근거에 기초해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정치적 힘에 의한 결정만이 남게 되지요. 결국 가장 큰 힘을 가진 집단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되고,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힘을 행사할 수 없었던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p.79)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면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쌍용자동차의 비극은 무분별한 정리해고가 이러한 현실을 만나서 발생한 일입니다. 그 참사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몸을 통해 극명히 드러났지요. 정부의 지원이 실질적으로 닿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자살로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이 비극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p.99)


“쌍용차 문제는 재난의 문제다. 인간이 만든 해고가 인간 삶을 부수는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 정치적 사건이다.(이창근, 2015)” 그러나 이러한 ‘재난’이 6년 동안 지속되는 와중에 국가는 해고자와 가족이 다시 설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해 주지 못했고 쌍용자동차 관련 노동자와 가족 28명은 죽음으로 이 재난의 사회적 의미를 알려주었다. 급격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하락과 사회의 지지의 단절 속에서 해고자는 6년간의 모든 부담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감당해야 했고 본 연구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정리해고가 그들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p.101~102) 


클랩교수가 부탁받은 일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클린룸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연구를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IBM으로부터 받은 노동자 사망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p.104~105)


자신의 연구에 대한 법정 증언을 일주일 앞두고, 클랩교수는 IBM이 고용한 변호사들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변호사들은 보고서의 한 문장 한 문장에 시비를 걸었습니다.(p.106)

 

인터뷰어: 왜 이런 일을 하나요? 돈 때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클랩교수: 골리앗에 맞서는 것이지요. 법정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이길 수 없습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p.108)


저자는 클랩교수를 찾아가 “당신처럼 나도 데이터를 분석해서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는 역학자가 되고자 한다. 그런데 내가 관심이 있는 사회적 약자의 건강에 대한 데이터는 찾기가 힘들다”(p.108)라는 질문을 합니다. 클랩교수는 “역학자가 적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싸움이 진행되는 링 위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p.109)라고 말합니다. 이후 김승섭 교수는 ‘항상 데이터를 먼저 수집’(p.109)했다고 합니다. 




김승섭 교수 -보건학자,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원 강사를 거쳐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와 동대학원 보건과학과 부교수를 역임했다. 2022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로 일할 예정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보건학자다. 결혼이주여성, 성소수자,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재소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천안함 생존장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지은 책으로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 있으며, 『장애의 역사』를 우리말로 옮겼다.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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