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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18. 2023

권여선 <각각의 계절>중 '실버들 천만사' BOOK리뷰

샛별BOOK연구소

사랑은 하늘하늘 나부끼는 실버들처럼.


<각각의 계절> 중 '실버들 천만사', 권여선, 문학동네, 2023.


  반희는 질기게 연결된 부부의 연을 끊기로 결심한다. 딸 채운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혼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p.76). 당시 아들(명운)은 성인이지만 딸(채운)은 고2라 반희는 엄마로서 죄책감이 컸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반희는 구립 체육관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한다. 체육관은 코로나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고,  채운이 제안한 1박 2일 여행에 반희는 망설이다 승낙한다. 


  반희와 채운의 여행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채운은 여행 기간 동안 휴대폰 꺼 놓기, 친구처럼 ~ OO씨 이름 부르기, 맛있는 거 해 먹기. 이렇게 세 가지 규칙을 정한다. 이에 협조해 주는 엄마 반희.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가로수를 달리며 모녀는 공평과 불공평을 얘기한다. 가족 중에서 가장 불공평한 사람은 반희였을지도.


  반희는 남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배었는데, 채운은 그게 다 눈치를 보는 거라고 일침한다. 짐이 무거우면서 길에 미리 나와 서 있고, 여행가면서 음식을 바리바리 싸 오고, 차에서 먹을 김밥 말아 오고, 맛있는 거 있어도 못 먹는 거. 잠깐 본 엄마의 행동을 두고 채운은 반희의 약점을 간파한다. 이런 반희의 눈치는 소설 초반에 딸과 통화할 때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반희는 통화가 끝나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는지, 말이 짧아 채운을 서운하게 하지 않았는지 살필 정도다. 반희의 이런 '점검''살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려심으로 포장해 계속 도출된다. 반희는 안다. 자신의 눈치는 슬픈 얘기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습관이라는걸. 마음껏 싸우지 못하는 약자들의 보호본능이라는걸. 반희는 이런 자신이 싫다. 남 눈치를 안 보고 살고 싶은데 잘 안된다.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p.50) 눈치를 보고 누군가를 챙기고, 돌보고, 점검하는 것. 이런 것도 채운이 닮지 않기를 바랐다. 만약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p.50). 딸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원했다. 보통 딸들이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엄마도 마찬가지다. 반희도 채운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만큼 반희는 채운을 사랑했다. 채운은 채운이로 크기를. 반희는 자신과 연결된 닮은 실들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 너는 너. 그러나 이것이 사랑일까. 


  1박 2일 동안 반희는 채운과 연결된 그 닮은 수천수만 가닥의 실을 본다. 끊었다고 생각한  실이 채운에게는 수천수만 가닥으로 엉켜ㅡ있다는 것을 보고 소스라친다. 엄마의 부재는 채운의 실타래를 엉키게 했다. 엄마가 차에서 잠깐 졸고 있는 모습을 보자 채운은 공황 증세를 보인다. 초등학교 때 시작된 엄마가 사라질 것이란 두려움은 결국 고2 때 현실로 일어났다. 엄마의 부재는 엄마의 죽음까지 확장해석해 채운의 마음을 휩쓸었다. 엄마를 향한 수천수만 가닥의 실들은 반희에게 닿지 못하고 채운에게 엉켜버렸다. 엉킨 천만사를 본 반희는 '지금껏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p.78)반문한다. 딸의 공황이 자신의 업보인 거 같아 다급하게 자책하며 풀어보려 하는 반희. 


  징글징글한 가족관계. 끊을 수 없는 실버들 천만사. 반희는 끊을 수 없다면 맞서보기로 한다.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며 뒷걸음치지 않고, 정면 승부하려는 듯 반희는 다음날 씩씩하게 남은 만두 한 알을 쏙 집어 먹는다. 딸이 자신을 향해 걸어왔고, 숲속에서 영원 같은 시간을 보내고 깨달았다. 반희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한다. 외면, 단절, 자유, 독립도 사랑의 방법이지만, 함께, 같이, 고통, 나눔도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이지 않을까. 반희는 집에도 한번 초대하지 않는 채운을 바라본다. 이제 엄마 집에 오라고!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끊으려 했던 수천수만 가닥의 실을 마음 바꿔 한 가닥씩 이어보려 한다. 


  불러도 불러도 아름다운 발음. 실~ 버~ 들~ 천~ 만~ 사~. 사랑은 이토록 여러 가닥으로 존재한다. 사랑은 하늘하늘 나부끼는 실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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