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정보라 소설집 <저주토끼>, 아작, 2017. 326쪽.
'저주토끼' 리뷰.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저주는 당사자만 몰락시키지 않는다. 저주는 복수와 달리 범위가 넓다. 저주는 영적이며 그 효능은 한 가문과 그 주변인들까지 영향을 끼친다. <저주 토끼>를 읽고 저주의 범위를 생각해 본다. 복수와 응징의 요소를 가진 저주. 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최종후보에 든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 <저주토끼>는 만두 파동 사건에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고 한다.
화자인 '나'는 자꾸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자꾸 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할아버지는 저주용품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공식적으로는 '대장간'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 집안이 저주 용품을 만드는 걸 모두 알았다. 무속인도 아니고 무당도 아니고 시체를 염습해 주는 집도 아니었다. 저주 용품을 만드는 집은 천민보다 더 낮은 취급을 받았다.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외톨이였다. 그러나 술도가 집 아들은 할아버지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왔고 친구가 되어줬다. 할아버지에게는 그 친구가 은인이었다.
최초 창작버전 복원 <저주토끼>, 래빗홀. 2023.
술도가 집은 동네에서 제일 큰 양조장이었다. 유지의 아들과 저주 용품을 만드는 집의 자식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말해줬다. 그 친구는 할아버지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일 것이다. 술도가집 아들은 공과를 다녔고 전통방식으로 술을 빚어 대량 생산해 전국을 제패할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쌀이 부족하다고 식량정책을 공표하며 술을 발효할 때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전통방식은 명맥을 잇지 못했다. 고민에 빠진 양조장 집 아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술을 만들기 위해 밤낮을 연구했다. 사람들 몸에 좋고 더 맛있는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부의 식량정책에 발목이 잡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술을 빚어온 장인 집안의 아들답게 그 역경을 헤쳐나갔다. 할아버지의 친구는 진득하게 자신의 신념을 갖고 술을 생산했지만 '정부 인사와의 친분, 인맥, 접대, 필요에 따라서는 뇌물이나 뒷거래'(p.14)에 잼뱅이였다. 그러나 늘 사업에는 경쟁업체가 생긴다. 그 경쟁업체는 달랐다. 그 업체는 인맥과 연줄, 접대에 능했고 알코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 광고를 엄청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친구 회사에서 만든 술은 '공업용 알코올을 섞는다'(p.15)고 까지 비방을 했다. 그 술을 마시면 눈이 멀고 불구가 되고 죽는다고 비방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사람들은 그걸 믿었다.
매출은 뚝뚝 떨어졌고 양조장은 공장 가동을 멈췄고 몰락했다. 도산해 버린 회사는 경쟁업체가 헐값에 사들였다. 좋은 술을 만들어 팔겠다는 건 죄가 되는 것인가. 착실하고 성격 좋고 가정에 충실하고 술에만 매진한 친구. 친구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결국 친구의 부인도 ‘불귀의 객’(p.15)이 되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저주용품을 개인적으로 만들고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깨고 결단을 내린다. 저주 토끼를 만들기로. 할아버지는 양조장 친구를 위해 전등을 만든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니 귀엽고 깜찍한 토끼전등을 만든다.
현대문학 단편 토론모임
왜 저주용품에 토끼일까를 생각해본다. 토끼는 귀엽고 조금씩 갉아먹고는 동물이다. 공장 사람들은 갉아먹는 게 토끼가 아닌 쥐라고 단정 짓는다. 할아버지가 저주 쥐를 만들지 않고 저주 토끼를 만든 이유는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p.9)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만약 저주 물건을 혐오스럽고 징그럽게 만들었다면 금방 발견되었을 것이고, 초기진압이 빨리 되었을 것이다. 흰색 솜뭉치 같은 귀여운 토끼가 절대 갉아먹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귀여운 게 그럴 리 없다고 맹신하는 태도가 더욱더 화를 불러냈다.
사장회사 창고에서 토끼 전등을 가져온 손자는 토끼 전등이 켜진 책상에서 숙제를 하고 학습지를 풀고 토끼 전등 옆에 있는 침대에서 잠을 잔다. ‘사장의 손자는 전등을 켤 때나 끌 때나 하루에도 몇 번씩 스위치를 누르기 위해 토끼의 등을 만’(p.24)진다. 토끼는 더 이상 종이를 갉지 않고 대신 다른 것(손자의 뇌)을 갉아먹기 시작해 결국 손자는 죽게 된다. 이후 술 회사는 토끼가 장부를 갉아먹기 시작하고 장부가 모두 사라져 국세청의 압박까지 받는다. 사장의 아들도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고 결국 죽는다. 손자와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본 사장도 몸을 투신해 죽는다. 자업자득이라고 했던가. 자신의 과업으로 술도가 집안을 풍비박산 만든 죄가 자신에게도 똑같이 반복된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이자 권선징악적 요소도 드러난다.
저주토끼의 저주는 광범위하며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가문이 몰락한다. 한 사람의 행동이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도 손자도 가업을 물려받아야 할 자손들까지 이어진다. 더불어 그 가업에 속한 직원들도 저주의 그늘에서 놓여있다. 지사 직원들은 본보기 삼아 담당 직원을 해고했고, 해고당한 직원은 '거동이 불편한 늙은 어머니와 어린 세 아들과 다섯 동생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밤에 휘발유를 들고 회사 담을 넘어와서 창고에 불을 지르려다 아직 해고당하지 않은 숙직 직원과 경비원에게 붙잡'(p.21)힌다.
저주토끼는 복수의 대상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그 당사자가 만져야 효능이 있지만 만에 하나 다른 사람이 그 저주용품을 만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주토끼를 터치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저주에는 무작위와 무모한 희생까지도 포함된다. 저주는 그런 점에서 굉장히 위험하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그 여파는 신적, 영적인 존재와 맘먹는다. ‘토끼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다’(p.29) 토끼는 최대한 악랄하게 복수한다. 저주의 속성에 관대함은 없다.
저주는 질주하는 속성이 있으며 번식까지 한다. 토끼의 번식처럼. 저주 토끼는 그 양조장 회사의 사장, 아들, 손자까지 가문까지 멸했다. 가문뿐 아니라 그 술공장에서 일했던 직원의 몰락까지 이어졌다. 저주의 파급력이 엄청나다. 치명적인 건 저주를 하는 사람까지 흡수한다. 저주토끼를 만들어 저주를 건 화자의 할아버지까지 번졌다. 왜 할아버지까지 저주의 덫에 놓이게 했을까. 일본 속담처럼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p.32)라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는 저주의 칼을 휘두르면 자신도 다칠 것을 알면서도 '응징'을 해야 했을까. 그 할아버지의 자손. 지금의 화자에게까지 저주가 미쳤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저주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이다. 옆에서 친구가 망하는 걸 본 할아버지는 이해, 포용, 노력, 사랑, 공감, 관용을 베풀어야 했을까. “할아버지의 친구를 위한 것”(p.10)이 당사자와 자신의 자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도 저주 토끼를 만들어야 했을까.
자신이 만들지 않으면 그 경쟁업체 사장은 스스로 반성하고 죗값을 받게 되어 있었을까. 이것은 순리, 신의 영역인가 묻는다. 저주토끼를 만들면서 할아버지는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가 있다. 할아버지는 “이승에 붙들어두는 닻과 같은 물건 옆에 영원히 앉아 있게 될 것”(p.34)을 알았을지도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실행을 했다.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른다. 현실에서 못하는 상황이 문학이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도 아버지가 햄릿에게 "아들아 복수를 해다오"하지 않던가. 복수라는 클리셰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주요한 소재가 될 것이다. 그만큼 인간사회에 응징, 복수, 원한, 미움, 저주, 원통, 억울의 키워드는 영원히 인간 옆에 앉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주 토끼>는 경쟁업체 술공장 사장의 고질적인 악랄함에 대한 파멸과 누군가를 저주하는 마음에 대한 염려와 대중들의 무능과 공동체의 순환 등을 잘 보여준다. 대중들의 무능은 진실 파악 없이 무조건 소문을 믿어버리는 모습과 토끼를 보고도 갉아먹는 건 쥐일 거라고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등. 죄를 지으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순환구조임에도 무릅쓰고 죄를 진 사람에게 응징하려는 마음 등. 다양한 토론이 오갈 수 있는 책이다.
발췌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등은 매우 귀여웠다. 토끼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나무 부분은 그다지 사실적이지 않았지만, 토끼는 한껏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토끼의 양쪽 귀 끝과 꼬리 끝, 그리고 눈은 검었고, 몸의 나머지 부분은 새하얀 색이었다. 딱딱한 재질인데도 보드라운 분홍 입술과 복슬복슬한 털의 질감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전등에 불이 들어오면 토끼의 몸체가 하얗게 빛났고, 그 순간만은 마치 살아 있는 토끼 같아서 귀를 쫑긋 세우거나 코를 벌름거리기라도 할 것 같아 보였다. (p.9)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용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업으로 만든 물건을 개인적인 저주에 사용해서도 안 된다. 대대로 저주용품을 만드는 우리 집안의 불문율이다. 토끼는 단 한 번의 예외였다. (p.10)
그래도 저주의 토끼가 경쟁사 사장의 집이나 회사 어딘가에 있는 한, 완전히 실패는 아니었다.
토끼는 사장실 탁자 위에 한나절 방치되어 있다가 직원들이 퇴근하기 시작할 무렵에 회사 창고로 옮겨졌다. 밤이 되자 토끼는 창고에 있는 종이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중략) 밤새 아무도 창고에 오지 않았고 토끼는 보이는 대로 마음껏 모두 갉았다. (p.18)
그러나 본사와 지사와 판매처 창고에 이미 퍼진 토끼들은 사라지지 낳았다. 창고에서 사무실로 서류와 함께 옮겨간 토끼들도 사라지지 않았다. 토끼들은 계속 보이는 대로 갉아댔고 그러면서 계속 번식했다. (p23)
사장 아들 집에서 토끼는 더 이상 종이를 갉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p.24)
그러다가 아이는 어느 날, 숨을 쉬지 않게 되었다. 아이 아버지는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아들의 빈방에서 혼자 문을 잠그고 오랫동안 울었다. 아들의 침대에 앉아 아들이 아끼던 토끼 전등을 무릎에 놓고 쓰다듬으며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한없이 통곡했다. (p.28)
이쯤에서 사장이 뒷목을 잡고 쓰러져 그 길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개일 것이다. 토끼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다. 사장은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진 것은 사장의 아들이었다. 죽은 자식의 침대에서 울다 지쳐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바닥에 받을 딛는 순간 그대로 오른쪽 발목이 부러졌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팔을 뻗었다가 왼팔이 세 군데 부러지고 한 군데 금이 갔다. (p.29)
“사장 아들은 결국 병원에서 죽었고, 사장은 아들 장례를 치르고 다음 날 회사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습관처럼 전등 토끼의 귀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끼가 끝만 까만 귀를 쫑긋쫑긋 움직였다. (p.32)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의미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면서도 아이는 단 한 가지, 토끼 모양 전등에는 몹시 집착했다. 토끼 전등은 이제 아이의 책상에서 침대 옆으로 옮겨 왔으며 아이는 천장을 바라보다가도 수시로 고개를 돌려 토끼 전등이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해야만 안심했고 누군가 토끼 전등을 만지면 몹시 불안해하며 발악을 했다. (p.28)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업으로 만든 물건을 개인적인 저주에 사용해서도 안 된다. 불문율에는 이유가 있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한다. 타인을 저주하면 결국 자신도 무덤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무덤이 세 개’라고 해야 하나. 할아버지가 저주했던 사장, 사장의 아들, 사장의 손자는 모두 죽었다. 할아버지의 무덤은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그냥 집 밖으로 나가서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왔다. (p.32)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산다면 나도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죽어도 죽지 못한 채 달 없는 밤 어느 거실의 어둠 속에서 나를 이승에 붙들어두는 닻과 같은 물건 옆에 영원히 앉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창가의 안락의자에 앉게 될 때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자식도, 손자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문을 다고 완전한 어둠 속에 홀로 선다. 이 뒤틀린 세상에서, 그것만이 내게 유일한 위안이다. (p.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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