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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03. 2023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표제작 리뷰

샛별BOOK연구소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중에서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문학동네, 2023. 


'그녀의 수업은 금요일 오후 세시 삼십분에 시작했다.'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첫문장이다. 금요일 오후에 어떤 학생들이 수강을 할까. 학생들은 불금을 즐기기 바쁠 텐데 말이다. 이 시간대를 배정받은 시간강사와 화자(희원)의 조우. 희원의 눈에 비친 강사는 인상적이다. 강사는 짧은 커트머리, 갈색 뿔테안경,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영문과 전공수업이고 전부 영어로 진행했다. 영어 에세이를 작성하는 수업이다. 원어민처럼 영어로 말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있는 강의실에 한국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수업하는 강사. 어려 보여 강사를 무시하는 공기가 은근히 강의실에 좌악 퍼진다. 


  희원은 수업중 생리혈이 청바지에 묻는다. 이를 난감해하자 강사는 선뜻 희원에게 재킷을 벗어주며 이촌동  자기 집으로 가서 옷부터 갈아입자고 한다. 희원은 얼굴이 빨개진다. 화자는 비정규직으로 은행을 다니다 다시 학교에 입학했다. 2009년 2학기. 스물일곱에 3학년 학사 편입생이다. 학생과 강사로 만난 둘은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화자는 시간강사에게 호감이 가 그녀가 쓴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시간강사도 화자가 제출한 에세이 글들을 기억하며 언급해 준다. 자기 색깔이 확실한 강사와 자기 색이 희미한 화자지만, 둘의 공통점은 '용산'이다. 용산과 멀어지고 싶었던 강사는 페이버팩 영어소설을 읽으면 용산을 떠날 수 있을 거고 싶었던 어린 시절. 영어를 전공하고 영문학 시간강사가 됐다. 화자는 그녀의 에세이가 솔직하다고 느꼈다. 솔직하게 적을 수 있는 사람은 용기있다. 희원은 강사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다. 


  소설은 수업풍경이 전해진다. 강사는 선이 분명했고, 수업태도도 확고했다. 토론을 하다 발언자의 말을 자르고 누군가가 끼어들면 참지 못하고 그런 태도에 대해 날서게 지적해 주는 사람이었다. "내 수업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앞의 학생에게 사과하세요."(p.24)라며 자신이 본 것을 못 본채 하지 않고 단호하게 사과까지 요구하는 저 당당함. 화자는 이런 강사의 태도를 선망했고, 동경했다. 


  소설은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2009년 용산참사사건을 언급했다. '남일당 건물 철거'를 하면서 30명의 세입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자 300명의 경찰이 투입했고, 이 진압과정에서 경찰은 물대포를 쏘고, 화염병이 든 시너를 던져 철거민 5명, 경찰 1명, 부상 23명이 발생했다. 희원은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이 길로 다니지 않고 버스를 타고 비켜 다닌다. 집에서 이십 분 거리에 있다는 그 건물. 아빠는 "태어날 때 가난한 건 죄가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건 자기 죄야."(p.27)라고 말해 희원은 울분이 났다. 희원과 강사는 이날을 기억하자고 암묵적으로 약속했다.


  합평시간에 학생들은 상대방이 쓴 글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사는 글에는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한다며,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p.32)라고 말했다. 희원은 강사의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글을 쓰는 태도에 관해 고민에 빠진다. 희원의 글에 대해 강사는 덧붙인다. 편향되지 않아 좋았다고. 그렇지만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느라 자기 목소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p.35)


  지적인 자극을 주는 강사는 희원에게 강렬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했고, 은행을 다녔고, 다시 대학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다시 대학에 왔냐는 그녀의 질문에 희원은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답에 강사는 실망한 눈빛이었고,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다 표정 지었다. 


  9년이 흘러 희원은 시간강사가 됐고, 누구보다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강사는 강단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학교에 염증을 느껴 떠났을까. '내가 늦깎이 대학생에서 대학원생으로, 시간강사로 나아가는 동안, 빛나던 젊은 강사였던 그녀가 더 이상 내가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동안에도 그곳은 여전히 빈터였다.'(p.44)


  그곳. 그녀와 함께 기억했던 용산. 서로 만날 수 없지만 그날 함께 용산을 얘기하고, 기억했던 일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남아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희미한 빛이 되어줄 수 있다. 희미하더라도 꺼지지 않는다면 그 빛을 따라 한 걸음 더 가볼 수 있는 것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발췌


나는 그녀의 눈으로 내가 직접 보지 못한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어린 그녀의 눈에는 한없이 높아 보이던 콘크리트 담장, 그 앞을 지날 때면 늘 쫓아오던 황구, 햇볕이 잘 드는 담장 앞에 쪼그려 앉아 황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일, 다시 길을 가려고 하면 졸졸 쫓아오는 황구가 자기 집을 못 찾아갈까 봐 쫓아오지 마, 쫓아오지 마, 소리치며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쓰던 골목, 동네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는 옥상들을 올려다보며 자기도 같이 놀고 싶다고 바라던 마음, 그때 그 건물에 붙어 있던 피아노 교습소 간판, 공사장들, 어린 그녀의 눈에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던 큰 건물들, 그리고 그녀가 많은 시간을 보낸 지하 전자오락실. (p.18) 


“지금 이 발표자의 글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순응주의, 능동적인 순종. 그런 말들에서 나의 글이,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발표자의 글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이라는 말은 나를 모욕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을 뿐, 그녀가 속으로는 분명 다른 판단을 내렸으리라고 짐작했다. 나는 그때 강의실을 둘러싼 이상한 열기를 기억한다. 그녀의 발언에 대한 지지와, 한편으로는 분명한 반감이 뒤섞인 공기를. 그 학기 내내, 그녀의 수업시간에는 그런 긴장감이 돌곤 했다.(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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