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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04. 2023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 <답신>리뷰

샛별BOOK연구소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중에서 <답신>, 최은영, 문학동네, 2023. 


  동생은 조카에게 편지를 쓴다. 조카는 언니의 딸로 스물세 살이다. 화자는 조카랑 네 살 때 헤어지고 이십여 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지만, 조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이모는 조카에게 어떤 글들을 쓰고 있을까. 


  최은영의 단편 <답신>은 엄마를 잃고 살아가는 자매 이야기다. 엄마가 집을 나갈 때 화자는 네 살, 언니는 일곱 살이었다. 화자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지내면서 어쩌다 우리 자매가 이 지경이 됐는지 생각하면 그 끝은 늘 엄마에 대한 증오가 남았다. 어떻게 딸 둘을 두고 떠날 수 있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엄마가 집을 나간 나이가 고작 스물일곱이었다. 집을 나갈 때 엄마도 어렸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 아빠는 언니를 미워했다. 언니가 있었기에 동생에게까지 아빠의 불똥이 튀지 않았다. 언니는 동생의 가림막이었고 보호막이었다. 동생에겐 언니가 엄마였고 전부였다. 언니는 조카를 스물에 가졌다. 엄마의 삶을 그대로 밟고 있는 언니. 동생은 교복을 입은 언니가 왜 학교 교련 선생님을 만나고, 그 선생의 아이를 갖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언니는 아빠의 눈치를 보며 살았으면서 이번엔 열다섯 살이나 많은 남편 눈치를 보며 산다. 동생은 언니의 행동을 도통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카에게 편지를 쓰면서 언니를 이해해 보려 한다. 언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언니의 집을 방문하며 목격하게 되는 장면들... 그(형부)는 임신한 언니에게 소파 아랫부분을 광이 나도록 닦으라고 말했고, 대걸레질을 시켰고, 한겨울에 보일러도 자기가 퇴근해서 올 때까지 못 틀게 했다. 언어폭력에 때리기까지 했다. 형부가 아닌 비열한 폭군이다. 동생은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분노가 올라왔지만 언니는 참고 참으며 이런다. "너희 형부는 착한 사람이야."(p.142) 언니를 볼 때마다 동생은 울화가 치민다. 매 맞는 여성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이는 언니. 동생은 언니가 비굴하고, 의존적이고, 답답했다. 언니가 못하면 내가 언니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해 형부에게 대들고, 할 말을 했다. 그 여파는 언니를 더욱 힘들게 했지만. 급기야 처제 앞에서 언니를 때리고, 보잘것없는 사람 취급을 하자 화자는 터져버린다.


  괴물 같은 그를 볼 때마다 참을 수 없었던 화자는 결국 감옥에 갔고, 언니는 동생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다. 자신은 남편에게 맞지 않았다고. 언니는 어떤 마음으로 그랬을까. 가정을 지키기 위해? 딸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이유로 동생을 버리고 남편을 변호했을까. 화자는 생각한다. 언니는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그랬을까. 어쩌다 우리 자매는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서로는 만나지 않는다. 언니는 인연을 끊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는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동생 오리털 파카를 사 주고,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주고, 도시락을 싸주고, 회수권을 사 주고, 빵을 사 먹으라고 용돈을 줬다. 그렇게 동생을 사랑했으면서...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언니는 동생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동생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언니는 동생을 볼 면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계속 만나다 가는 동생에게 더 못 볼 꼴을 보이게 될지도. 언니로서 자격 없음을 알고 있다. 동생의 안전을 위해 언니는 고립되기로 결정했을까. 


화자는 생각한다. 내가 아는 언니는 어떤 사람일까. 화자는 언니가 멍청하고, 겁쟁이고, 불행에 주저앉아 탈출하지 못하고, 동생에게 굴욕감을 안겨 준다고 판단했다.


 '나는 옳고 언니는 그르고, 나는 맞고 언니는 틀리고, 나는 알고 언니는 모르고, 나는 할 수 있고 언니는 할 수 없고, 나는 용감하고 언니는 비겁하고, 나는 독립적이고 언니는 의존적이고. 나는 떳떳하고 언니는 비굴하고. 나는 배려하고 언니는 이기적이고. 나는 언니를 지켰고 언니는 나를 버렸지. 모든 것이 분명해서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p.175)고 믿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언니일까. 언니를 판단하고, 언니의 죄를 물었던 화자는 긴 세월이 흐른 후 언니를 다르게 생각한다. 어릴 때 생각했던 언니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진실에 가닿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언니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해'(p.175) 그래서 이렇게 매일 답신을 쓴다. 


  언니를 이해하고, 헤아려보고 싶은 화자다. 언니는 어떤 마음으로 형부와 살아가는지, 어떤 마음으로 나를 감옥에 넣게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내 말을 안 믿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나를 거부하고 안 만나는지 알지 못한다.  화자는 답신을 쓰면서 언니에게 얼마나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 깨닫는다. 그러나 언니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언니를 보듬어줬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화자는 부치지 못하는 답신을 계속 쓸 것이며 쓰고 찢더라도 계속 물을 것이다. 그리고 언니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사랑하는 언니를 위해 동생은 오늘도 조카에게 '답신'을 쓴다. 답신은 소통하고 싶다는 간절한 행위이자, 마지막 희망이다. 


언니 보고 싶어.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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