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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27. 2023

강진이 그림일기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리뷰

샛별BOOK연구소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강진이 지음, 수오서재, 2023. (260쪽)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두고두고 생각나겠지. 오늘 이 순간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 삶을 수놓은 행복과 감사를 채집하는 그림일기" 


너무 예쁜 그림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릴 적 순간들이 또렷하게 떠오르네요. 국수를 받아먹던 어린이에서 국수를 끓여주는 어른으로 자랐지만 단 한 번뿐인 어린 시절이 가끔은 그립기도 합니다. 그림일기를 읽는데 어쩜 이리도 저 어릴 때 모습을 그대로 재현시켰을까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그림을 보면 아...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네요. 물론 엄두도 못 내겠지만요. 어린시절의 한 페이지를 그림과 글로 남기는 일.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있었을 법한 장면들. 그림으로 만나 잠깐 추억에 잠겼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만 봐도 좋을 책입니다.



의기양양하게 국수를 헹구고 한 줌 집어 물기를 뺀 국수를 아이 입에 넣어주었다. 이때 먹는 국수가 가장 맛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어느새 둘째도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섰다. 새끼 제비 두 마리처럼. 소파에서 큐브 맞추기 삼매경이던 아빠 제비는 이 관경을 놓치지 않고 흐뭇하게 바라보다 외친다. "나도, 나도!" (p.21)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는 걸 좋아했다. 대문 앞 귀퉁이, 장독대에 오르는 계단, 그늘진 나무 아래, 다락방 창가 등 다양한 곳에 돗자리를 펴면 집이 되었다. 깨진 벽돌 조각을 빻아 만든 고춧가루를 잘게 썬 들풀에 섞어 김치를 만들고, 흙에 물을 조금 넣어 밥을 지었다.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소꿉놀이할 때는 재잘재잘 말이 많았다. (p.63)



십 원, 이십 원 돈이 생기면 골목 초입에 있는 뽑기 장사 아저씨에게 달려가 냄새부터 달달한 뽑기를 소중하게 받아와 남의 집 대문 앞 계단에 쪼르르 앉아 별 모양을 조심스럽게 따내던 기억. (p.76)




이불과 베개도 먼지를 탁탁 털어 일광욕시킨다. 사각거리며 말라가는 빨래들 올올이 햇빛과 바람이 스며들 것이다.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땐 가지 끝에 올라온 새순내음이 나겠지. (p.87)



감자볶음을 하려고 급히 감자를 사러 갔던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도 아저씨는 책을 읽고 계셨다. 시간을 오래 뺏지 않으려 서둘러 감자를 샀다. 흙과 풀 냄새가 뒤섞이며 들리는 빗소리가 책에 빠져들기 더없이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아저씨가 오랫동안 소박한 가게에서 잔잔한 행복 누리실 수 있기를 바라 본다. (p.125)



텔레비전과 빈둥거리며, 깜빡깜빡 졸며 오전 시간을 몽땅 보내버렸다. 짭조름하게 끓인 라면도 다 비우고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게 왜 이리도 안 되지.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유혹이 달콤해도 너무 달콤하다. 단순한 나는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데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p.127)



우당탕우당탕. 버튼 키 누르는 소리가 나면 우리 집에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 간지럼을 참는 듯한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내며 두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여기저기 숨을 곳을 찾는다.(p.145)




오늘은 모처럼 내가 좋아하는 김치를 담근다. 오이소박이. 그때 노래를 들으니 시간이 멈춘 듯 이십 대의 꿈 많던 내가 그립기도 하지만, 알맞게 익은 오이소박이에 물 말은 밥을 먹을 생각하는 지금의 나도 나는 마음에 든다. (p.205)




<노동의 새벽>이란 책으로 익숙한 박노해 씨의 사진전을 보았다. 지구상에서 제일 아프고 가난한 땅인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에서 그들이 짊어진 가난, 분쟁, 아픔과 고통의 삶을 담은 사진전에서 내 발길을 잡았던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에디오피아의 아침을 여는- 분나 세레모니'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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