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샐린저의 고독
<샐린저 평전>, 케니스 슬라웬스키, 민음사, 2014.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인 J.D. 샐린저(19109-2010)는 영원한 청춘의 상징으로 불린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주인공 ‘홀든’은 허위의식과 물신주의에 빠진 미국사회를 비판한다. 책이 출판되고 금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단 한 권의 장편소설을 쓴 샐린저에게 저항문화의 아이콘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바로 '홀든'이라는 인물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외롭고 우울했던 홀든의 삶은 샐린저의 삶과 닮아있다.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샐린저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웹사이트(DeadCaulfields.com)를 2004년부터 시작해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그는 샐린저가 사망하자 <샐린저 평전>(2010)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샐린저 평전>으로 2011년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2012년에는 ‘휴머니티스 도서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베니티페어≫,≪헤링턴 포스트≫에서 활동하며 ≪뉴욕타임즈≫, ≪ UK 타임스≫에서 평론을 쓴다. <샐린저 평전>은 샐린저의 생애와 작품집필, 출판사와의 관계, 결혼과 자녀출생 등의 기록들이 시간 순으로 담겼다. 평전을 읽을 때 샐린저의 작품인 <호밀밭의 파수꾼>, <아홉 개의 이야기>,<프래니와 주이>,<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시모어:머리말>를 읽기를 주문한다. 작품을 읽고 평전을 읽으면 더욱 깊은 샐린저의 문학세계를 파고들 수 있다.
1932년 샐린저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맥버니 스쿨(McBurney School)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글을 썼으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자 부모는 그를 밸리 포지 사관학교 (Valley Forge Military Academy)로 전학시킨다(1934). 펜실베니아에 있는 밸리 포지 사관학교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다니는 학교의 모델이 된다. 샐린저는 뉴욕 대학 (New York University)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중퇴한다. 중퇴하고 부모의 뜻에 따라 가업을 이을 목적으로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육류 가공, 포장 따위의 일을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자 샐린저는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돌아온다. 1939년(20세)에 콜롬비아 대학에서 문예 창작 강의 들으며 잡지 ≪스토리≫(Story)의 편집자인 휘트 버넷을 만나 친분을 쌓으며 교류한다. 그 후 버넷은 샐린저의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샐린저는 철저한 은둔 생활과 화려한 여성 편력 등으로 언제나 언론에 이슈화됐다. 샐린저의 첫사랑은 우나 오닐(유진 오닐의 딸)이었으나 그녀가 찰리 채플린과 결혼하자 실의에 빠진다. 샐린저는 독일 여성 실비아와 결혼하고 8개월 만에 이혼한다. 1953년에 샐린저는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깊은 산속인 뉴햄프셔의 코니시에 들어가 칩거 생활을 한다. 샐린저(36세)는 명문 여대 래드클리프의 학생이었던 클레어 더글러스와 두 번째 결혼을 하며 딸 마가렛, 아들 매트를 낳는다. 그러나 벙커에서 생활하며 은둔하는 샐린저에게 불만이 많았던 더글라스는 1967년에 이혼한다. 그 후 샐린저(53세)와 조이스 메이너드(Joyce Maynard)는 사랑하게 된다. 당시 18세로 예일대 신입생이었던 조이스 메이너드와는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기고한 에세이를 보고 샐린저가 편지를 보내 교류하다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샐린저(69세)는 40살 연하의 콜린 오닐과 세 번째 결혼을 한다.
샐린저는 장편 소설보다 단편 소설을 많이 쓴 작가다. 1940년(21세)에 단편소설 <젊은이들>(The Young Folks)을 ≪Story≫에 발표하며 등단했고, 곧 <매디슨 거리의 하찮은 반란>(Slight Rebellion off Madison)은 여러 잡지에 기고했으나 거절당한다. 그러나 ≪뉴요커≫(The New yorker)에서 채택된다. 1942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샐린저(23세)는 유럽으로 배치되어 범죄자를 심문하는 일을 맡는다. 샐린저는 전쟁 중 유럽에서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를 만나 문학적 교류를 나눈다. 군 생활은 그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남긴다. 전쟁 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며 글을 쓰는 숙명에 대해 고뇌한다.
훗날 방첩부대 동료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샐린저는 테이블 밑에서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주변의 폭발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p.169) 전쟁 중에도 글쓰기가 얼마나 그에게 절박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평생을 글과 함께 살았고 글쓰기는 그가 사는 방법이었다. 군대에 대한 샐린저의 비난은 엄청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묘사로 시작되는 <마법의 참호>(1944)는 전쟁기간에 쓴 작품인데 “몇 세대가 지날 때까지 출판될 수 없을 것”(p.153)이라고 말했다. 전투에 영광 따위는 없다. 오로지 강철 같은 의지로 살아남으려는 미친 몸부림뿐이다. 개성을 말살하는 군대문화, 부상당한 병상들이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최전선으로 돌려보내는 군 내부 방침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총알받이로 소모되는 군인들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그는 “아이들에게 전쟁의 영광을 거짓으로 선전하지 말고, 전쟁은 끔찍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p.157)”고 피력한다. <마법의 참호>는 해변에 전사자의 시체와 안경을 찾아 모래밭을 뒤지는데 여기서 살아남은 자는 종군목사 한 명뿐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직접 경험한 샐린저는 이 작품에서 “신은 어디에 있는가?”(p.158)라는 질문도 던진다.
1951년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이 출간되자 그는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집 근처에 벙커를 만들고 간단한 점심을 준비해 하루 종일 글을 쓴다. 가족들과 단절된 채 집필을 하며 그는 점점 선불교와 힌두교 등 동양 종교에 심취한다. 중편소설 <목수들이여,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시모어: 인트로덕션>를 엮어 출판하며 더 이상 작품을 내놓지 않는다.
<샐린저 평전>으로 샐린저의 글쓰기 작업과 책이 출판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작가와 편집자가 책을 매개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면 당시 미국 출판시장을 엿볼 수 있다. 평전은 샐린저의 사생활보다 작품세계에 집중되어 있다. 작품이 쓰이게 된 배경부터 주인공의 탄생과 일화를 세세하게 수록했다. 예를 들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오랫동안 어떻게 집필되었고 편집자의 손을 거쳐 출판되기까지 여러 장에 걸쳐 수록했다. 소설이 당시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력과 대중들의 반응, 평론가들의 태도까지 꼼꼼하게 증언하고 있다. 평전은 샐린저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실비아 플러스 등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과 존 레넌의 암살까지 다뤘다. 평전을 통해 얻는 수확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품세계를 파헤친다는 데 있다. 평전은 훗날 미국 문화를 바꾸어 버린 책의 영향력에 대해 심도 있게 다방면으로 증언한다. 홀든 콜필드는 소설 주인공을 넘어 샐린저와 함께 걸어온 인물이다. 샐린저는 자신의 책표지에 어떤 그림이나 장식, 작가 사진이 인쇄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독자는 평전을 통해 한 작가가 걸어온 삶의 복잡성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지키기 위해 은둔한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던 한 '고독한 파수꾼'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