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에세이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노는 중입니다>, 김미경, 바이북스. 2024.
-은퇴 후, 중년의 삶을 근사하게 채워 줄 설렘주의 에세이-
우연히 독서 모임에 참여하며 책을 다시 잡으면서 내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61쪽)
책으로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여기 산증인의 책이 나왔다. 책을 좋아하는 독서인이라면 푹 빠져 읽을 필독서다. 일과 아이를 키우며 치열하게 읽고 쓴 책이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퇴직 이후의 삶도 잘 보낼 수 있게 됐다.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노는 중입니다>다. 언뜻 보면 제목에 '노는 중'이 있어 일반적인 '논다'라는 개념을 떠올리겠지만, 이 책은 우리가 아는 '논다'와는 다른 개념을 선물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엄마로서 어떻게 열심히 놀았을까. 무척 궁금해진다.
차례는 총 5장으로 '수고했어,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를 시작으로 '걱정하지 마, 우린 나이 드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야'로 끝난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으면서 '아! 내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 테다. '나도 이런 적 많았는데'라며...
독서가는 루틴도 관심사도 활동반경도 엇비슷하다. 작가 또한 책을 좋아하고, 음악과 영화, 걷기와 여행, 그림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다. 그녀는 독서토론 모임에 나가고, 리뷰를 쓰고, 다시 홀로 책을 읽는다. 이런 모든 행위를 작가는 '놀이'로 명명한다.
작가는 32년간 근무했던 일터를 떠나며 책을 한 권 내기로 결심한다. 소위 직장과 헤어질 결심. 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기쁘기도 하지만 제 2의 인생이 불안해진다. 빡빡했던 스케줄은 텅텅 비어 있을 텐데,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걱정된다. 작가는 일하면서 '놀았던' 경험을 풀며 퇴직 후 어떻게 놀면 좋을지 미리 예행연습을 했다. 연습은 성공했다.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노는 중입니다>에는 두 개의 키워드가 있다. '엄마'와 '노는 중'이다. '엄마'라는 이름과 존재에 고군분투한 흔적과 갈등이 펼쳐진다. 작가의 어머니는 노래를 잘했고 톨스토이를 좋아했다. 작가는 어릴 때 엄마 생일에 반짇고리를 선물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 선물이 엄마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니었을까 고백한다.
우리에게 '엄마'는 밥해주고, 빨래해 주는 존재다. 엄마도 자녀도 고착화된 성 역할에 벗어나기 힘들다. '엄마가 +논다'의 조합은 불편하고, 죄책감을 갖게 만들지 모른다. 엄마에게 모성, 헌신, 희생은 당연하지만 '논다'는 이미지는 익숙지 않다. 게다가 '논다'에 '열심히'까지 붙어 있어 부정당하기 쉽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온 작가가 있다. 엄마도 충분히 놀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놀자고 주장한다. 상투적이지만 엄마가 행복할 때 가정에 평화가 온다.
책은 저자가 엄마 역할에서 '나'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별히 엄마와 나를 분리할 수 없지만, 최소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하고 살기로 마음먹는다. 입주할 아파트를 보러 가 남편이 방 하나를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 서재라고 언급할 때 작가는 작은 분노가 일었다고 한다.
작가 또한 엄마로 살며 고뇌한 흔적들이 아프다. 엄마는 홀로 설 수 있을까. 나는 자녀가 있는 한 완벽한 홀로서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타협을 해야 한다. 엄마의 역할, 직장, 그리고 나를 찾는 여정까지 모두 타협 속에 완성된다. 작가도 아들을 키우며 엄마의 무조건적 성역할에 벗어나려 애썼고, 타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작가의 '놀이'는 이렇다. 큰 책상을 마련해 '파란색 수국과 디퓨저병'(p.42)을 놓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글을 썼다. 그녀는 초5학년 때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둘째 조처럼 살고 싶어 했고, 전혜린을 읽고 반했고,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취했다고 한다. 지금도 '조'를 동경한다며... 그래서인지 직장을 다니며 매일 썼다. 365글쓰기, 백일 글쓰기를 하며 기록하고 적었다.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했고, 논제를 만들고, 서평을 썼다.
책에는 많은 책들이 소개된다. <시선으로부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평범한 인생>, <한 여자>, <멀고도 가까운>, <대불호텔의 유령> 등등. 영화도 <몽마르트 파파>, <소울>, <스틸라이프>, <패터슨>,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 소개된다. 전시와 그림도 언급된다. 독자는 작가가 소개한 '놀이'를 간접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열심히 놀았던 작품들도 떠올린다.
'노는 중입니다'는 치열하게 살았을 때 떳떳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작가는 직장과 엄마와 아내 역할로 바빴다. 그러나 우리는 역할만으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의 놀이는 책, 글, 영화, 그림, 연극, 플루트, 여행, 걷기 등이다. 일하며 치열하게 놀고 쓴 한 권의 책.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특히 위에 열거한 놀이(?)를 좋아한다면 공감 가는 내용이 수두룩할 것이다. 가독성 좋고, 문장은 수려하다. 첫번째 책이라고 믿기 어렵다. 상황 표현도 재밌다. 여러 에피소드를 읽을 땐 웃음이 터졌다. 눈물도 또로록...나온다.
작가는 30 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고, 퇴직을 앞두고 있다.(서울에서 인천으로 출퇴근 한 삶에 경의를 표한다.) 퇴직 이후 삶은 낯설 것이다. 작가는 신나게 노는 예행연습을 했다. 이제 본격적인 '노는 중'이 시작된다. <엄마는 오늘도 열심히 노는 중입니다> 2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어떤 놀이로 채워질까.
삶은 끝없이 '나'를 찾는 여정이다. 이 책 한 권 들고, 훌쩍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카페나 미술관, 독서모임, 글쓰기, 서점, 영화관, 소도시 여행 등~ 엄마지만 하고 싶은 놀이를 해보는 것이다. 이런류의 에세이가 출간되어 든든하다. 엄마의 역할만 강조하고 성장을 강요하는 책들과 달라 숨통이 트인다. 강추한다.
저도 열심히 노는 중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