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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26. 2024

[샛별의 고독한 문장 23]이승우 소설집 <목소리들>

샛별BOOK연구소


이승우 소설집 <목소리들> 중 '마음의 부력', 문학과지성사. 2023. (240쪽)


사랑이 속이고 빼앗는 사건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사랑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106쪽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평하지 못할 때 그건 죄가 된다. 똑같이 사랑을 나눴더라도 자식은 차별을 느낀다. 소설은 '편애'라는 주제를 복합적이고 뼈아프게 그려냈다.  


  <마음의 부력>은 엄마사랑을 더 받은 동생 입장에서 썼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능동적 입장이라면 사랑받는 사람은 수동적 입장이다. 화자(성식)는 엄마에게 사랑을 흠뻑 받는 수동적인 입장이었고, 그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된다. 성식(동생)은 엄마에게 사랑받을 때마다 형(성준)에게 미안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성준이냐라고 부르는 순간. 그동안 억눌렸던 부담감과 죄책감이 '마음의 부력'으로 떠오른다. 


 어머니는 아들의 목소리를 헷갈려 했다. 성준이가 전화를 걸면 성식이냐?고 받는다. 반면, 성식이가 전화하면 성준이냐고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성식이 목소리는 정확히 알고, 성준이는 헷갈려 했다. 이 사실은 성식이를 더 편애하는 증거가 된다. 


  화자가 이런 말을 하자 아내는 "당신의 목소리가 더 흔해서 그런 거야."라며 "매화꽃은 살구꽃과 비슷하지만 살구꽃을 보고 매화라고 부르지는 않잖아. 대표적이라고 해도 되고 더 친밀하다고 할 수 있지"라고 한다. '어머니가 나에게 더 친밀하게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아내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p.103) 성식은 이 사실이 괴롭다. 왜 엄마는 형에게 내 이름을 부르는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그리고 '혼돈하고 공허한 채로 내 마음속에 떠돌던 무정형의 어둠을 끄집어낸 순간'(p.105)이 찾아온다. 엄마가 성식에게 성준이니?라고 부르는 순간이. 


  화자는 어머니의 '편애'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자신과 형의 모습을 창세기 리브가(어머니), 에서(큰아들), 야곱(작은아들)을 가져와 설득한다. 아내는 매화꽃과 살구꽃의 예시를 들며 반론한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편애의 대상이 된 성식. 편애의 대상이 된 당사자가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은 슬프다. 그렇지만 편애를 받은 자 또한 비자발적인 피해자라고 설파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형에게 돌아갈 몫을 부당하게 차지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자신을 외면하지 못했다.' (p.103)


  성식은 생각한다. 리브가의 사랑을 많이 받은 야곱은 어땠을까? 야곱은 의도치 않게 형 에서에게 박탈감을 줬고, 그를 소외시켰다. 성식은 사랑을 더 받은 야곱이 괴로웠을지 모른다고.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자기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싫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형을 볼 낯이 없어서.'(p.106)


  '그녀가 큰아들인 에서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단지 작은 아들을 사랑했을 뿐이다.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다른 누군가가 사랑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사랑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설이다.' (p.105)


   남편의 말에 아내는 이런다. 에서는 독립적인 사람이라 사랑받는 것을 간섭으로 여겼을 것이고 야곱은 가정적이라 사랑을 더 받은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여기서 성식은 아내의 말을 듣고 에서가 '독립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어서 사랑을 받지 않거나 사랑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지 못해서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 된 건 아닐까, 어쩔 수 없이?'(p.107)라고 말한다.  


  아내는 야곱은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더한다. 사랑이 필요해 보였기에 리브가가 야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충한다. 이 말을 듣고 그렇다면 사랑을 강요한 건 야곱이 된다고 성식은 말한다. 아내는 어머님이 그러는데 당신은 "한곳에 눕혀놓으면 한나절 내내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고 하더라. 어찌나 순한지 칭얼거릴 줄도 몰랐다며? 아주버님과 달랐대."(p.111) 하자 성식은 칭얼거리지 않은 이유가 칭얼거릴 틈이 없이 보살폈기 때문이라며 억지를 부린다. 


  성식은 자학의 감정에 빠진다. 형은 자신과 다른 성격이었다. 형은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하고 무엇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학과가 맞지 않다며 학교를 두 번 옮겼고 연극과 문학에 빠졌다. 1년 이상 직장을 다닌 적이 없고 형은 늘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읽고 쓰는 데 열성적인 사람이었다. 


  반면 성식은 답답할 정도로 규칙적이고 틀에 박힌 생활과 대학교에 들어가 적성에 맞지 않은 걸 한 학기를 다니고 알았지만 끝까지 다녀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공무원이 됐다. 성식은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잘 몰라 자신을 어쩜 태만한 사람, 삶에 의욕도 사랑도 없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적극성의 결여'로 인해 이룬 출세를 사람들은 칭찬했다. 


  형은 늘 성식의  마음속에 자리했다. '그가 나에게 어떤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형을 의식하며 살았다.'(p.110) 형은 화자에게 "면목 없다"라고 했지만 화자가 형에게 하고픈 말이다. 그러나 화자는 내가 형보다 엄마의 사랑을 더 받아서 미안했고 면목없다고 말하고 싶다. 형의 느닷없는 죽음은 보고 싶지 않은 감정을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음의 부력'. 


  어머니는 성식에게 전화를 걸어 성준이가 카페를 한다고 돈을 좀 빌려달라고 하며 그때 너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빠듯해서 성준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고 전한다.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성식이 사는 거 좀 봐라...... 세상에! 내가 미쳤지.'(p.113) 이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모른다며 이제 그 돈을 성준이에게 해주고 싶다는 엄마. 성식은 엄마의 말에 마음이 어질어질하다. 


  성식은 형을 잃었지만 엄마가 화초와 종교로 너끈히 이겨낼 줄 알았다. 상실감과 슬픔을 극복할 줄 알았다. 어머니에게 깊은 회한과 죄책감이 공존하는 줄 몰랐다. 어머니가 치매를 보일 줄이야... 슬픔,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면 묽어지지만 깊은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해진다는 걸 성식은 알았다. 회한과 죄책감은 무자각적 반응이고 통제하기가 훨씬 까다롭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어머니는 큰아들에 대한 깊은 회한과 죄책감을 갖고 계셨다. 억눌려왔던 감정이 솟구쳐 성준에게 카페 차릴 돈을 해주고 싶다는 말. 어머니는 형이 존재했던 시간으로 회귀한다. 어머니는 기억을 상실해도 계속해서 성준이에게 돈을 해줘야 한다고 전화를 걸 것이다. 그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반응이다. 


  여기서 성식은 다시 생각한다. '나는 사랑의 대상인 야곱이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 제법 깊이 생각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리브가가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p.117) 비로소 성식은 자식을 편애한 리브가도 괴로웠음을 보게 된다.  


  어머니는 반가워하며 "성준이냐?"라고 묻는다. 마지막 문장은 쓰리다. "그런데 어머니, 지난번에 내가 말한 거요. 조건이 괜찮은 카페가 싸게 나왔다는 거. 이제 그거 계약을 할까 하는데..."(p.118)  성식은 성준이 역할을 한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어머니는 큰아들에게 돈을 마련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을까. 성식에게 받으면 너에게 주겠다고 말했을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엄마는 이제 깊은 회한과 죄책감이 옅어졌을까.  


  아들 둘을 홀로 키운 어머니는 끝까지 죄인이 된다. 사랑은 잔인하다. 사랑을 하는 자도 사랑을 더 받은 자도 사랑을 덜 받은 자도 아픔투성이다. 자식을 편애한 어미의 원죄. 그 안에서 아팠을 두 아들. '사랑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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