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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05. 2022

유은실 소설 <순례 주택> BOOK 리뷰

샛별BOOK연구소


<순례 주택> 유은실 장편소설, 비룡소, 2021.


   소설은 비현실성을 내포한다. 이는 소설이 가진 특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 걸까. 세상은 팍팍하고 빈틈이 없다. 시계 톱니바퀴처럼 철두철미하게 돌아간다. 현실과 달리 소설은 판타지를 품고 있다. 삶의 궤도에서 잠깐 이탈하고 싶을 때 우리는 소설을 찾는다. 이번 <순례 주택>은 특히나 더 환상적이었다. 소설 속 인물인 순례 씨는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순례 씨의 행동들은 현실과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스크루지 같은 건물주는 봤어도 천사 같은 건물주는 못 봤다. 순례 씨는 후자다. 그럼에도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거 같다. 독자들은 소설 속에서 이런 인물을 만나고 위로받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만약 건물주가 된다면 조금은 순례 씨를 닮기로 말이다.


  <순례 주택>은 총 5부로 되어 있다. '순례 주택'은 빌라 이름이다. 순례 주택 주소는 '거북로 12일 19(거북동)'이다. 거북역 3번 출구, 도보로 오분 거리. 그야말로 역세권이다. 대지 면적은 72.5평, 필로티 구조의 4층 건물이다. 빌라 201호, 301호, 401호는 14평이다. 202호, 302호, 402호는 25평이다. 1층엔 12평짜리 상가가 있고 1층 나머지 공간은 주차장, 옥상엔 옥탑방이 있다. 옥탑방과 옥상정원은 입주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 순례주택의 건물주는 402호에 사는 김순례 씨(75세)이다. 그녀는 스물에 결혼해 서른다섯에 이혼했고, 아들이 하나 있다. 순례 씨는 유능한 세신사였다. 세신사 일을 하며 1층 양옥집을 샀고, 근처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주택가격이 배로 뛰었다.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일정 땅을 보상받았다. 보상금을 합쳐 양옥집을 허물고 순례주택을 짓게 됐다. 순례 씨에게는 은총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일이 착착 진행될 수 있다니.


  순례 씨는 이혼하고 세신사 일을 하며 홀로 아들을 키웠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잘 안다. 순례 씨는 순례주택이 나라에서 보상받은 금액이 들어 있는 게 불편하다. 자신이 땀 흘려 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순례 씨는 시세에 맞춰 임대료를 받지 않고 사람들 형편에 따라 방을 임대해 줬다. 예를 들어 어린 남매를 홀로 키우는 조은영 씨(47세)에게도 순례 씨는 202호를 빌려줬다. 조은영 씨는 순례주택 1층 상가에 '조은영 헤어'를 차렸다. 미용실을 차리느라 방 구할 돈이 없자 순례 씨는 보증금 없이 월세만 받고 임대해줬다. 조원장은 이 년 만에 보증금을 채웠으며 순례주택에서 딛고 일어섰다.


  302호엔 홍길동 씨(66세)와 남편이 산다. 길동 씨는 순례 씨 전 직장동료이다. 401호엔 영선 씨가 혼자 산다. 영선 씨는 옥탑방 커피머신 원두를 늘 채워다 놓으며, 새벽 옥상을 좋아한다. 301호엔 허성우 씨(44세)가 산다. 직업은 대학강사다. 그는 순례주택 청소 알바를 한다. 대신 입주민은 그에게 월 2만 원씩 내야 한다. 201호엔 고 박승갑 씨(향년 75세)가 살았다. 승갑 씨는 화자의 외할아버지이다. 화자는 오수림이다.


  할아버지는 거북마을에서 전파사를 했다. 할아버지와 순례씨는 20년을 사귀었다. 그런데 갑자기 승갑 씨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박승갑 씨는 순례 씨와 오랜 연인이었다. 순례 씨는 칠 년 정도 수림이를 키웠다. 연년생인 수림과 미림을 키우기 어려웠던 엄마(영지)는 수림이를 아버지에게 맡겼고, 외할아버지인 승갑 씨와 순례 씨는 수림을 함께 순례주택에서 키웠다.


  미림과 수림은 같은 자매여도 성장 과정이 달라서인지 전혀 딴판이다. 미림이는 한 마디로 자기만 안다. 싸가지가 없다. 공부는 전교 1등을 하고 서연고를 가기 위해 준비중이다. 반면 동생 수림이는 공부는 못하지만 철이 다 들었다. 소설은 이 두 자매를 극과 극으로 배치해 독자들에게 수림이를 옹호하게 만든다. 수림이는 한마디로 애어른이다. 순례 씨도 비현실적이지만 수림이 또한 이런 아이가 있을까 싶다.


  순례 씨와 수림이 엄마의 행동이 상극이듯 미림과 수림이의 행동도 완전히 다르다. 작가는 캐릭터를 천사와 악당으로  나눠놨다. 천사의 행동은 이타적이고 악당들의 행동은 이기적이다. 순례주택에 사는 인물들은 선하지만 언더그랜디움 아파트에 사는 미림이 엄마는 자신만 안다. 미림이 엄마는 빌라에 사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공부를 못하면 무시하고, 직업이 변변치 못하면 무시하고, 학벌이 없으면 무시했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사는 여자다.  


  반면, 순례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룰을 잘 지킨다. 서로 돕기도 하고 나누며 각자 맡은 역할을 했다. 이기적인 행동은 절대 용납하지 못했다. 늘 악당들은 망한다. 결국 원더그랜디움에 사는 미림이네 가족도 망했다. 할아버지가 태양광 사업에 투자했다 사기꾼에게 당했고. 할아버지 명의였던 원더그랜디움은 경매로 넘어갔다. 미림이네는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됐다.


  미림 엄마는 자기가 욕했던 빌라촌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모든 것이 못마땅한 오미림은 창피하다고 울고, 빌라에 살게 된 게 너무 자존심 상한 엄마도 울고, 아빠는 넷이나 있는 누이들이 아무도 안 도와준다고 징징거린다. 39평을 14평으로 줄여가야 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가족 중 멀쩡한 인간은 오수림뿐이다. 오수림은 줄자처럼 반듯반듯하게 각도를 재고 일처리를 한다. 공부머리는 없어도 일머리가 있는 수림이는 얼간이 같은 이 세명을 구출해 준다. 어쩌겠는가. 자기 가족이니.


  순례 씨는 키웠던 정 때문인지 수림이를 무척 아낀다. 수림이를 '최측근'이라 부르고 밥을 많이 차려줬다. 인생을 살 때 "행복하게 살아야 해"(p.99)라고 알려준다. 순례 씨가 자주 하는 말은 '감사하다'라는 말이다. 순례 씨는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뜻의 순례에서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로 이름을 개명했다.


  순례 씨는 어떤 사람일까. 단호할 때 단호하고 깔끔한 성격이다. 군더더기 있는 걸 싫어하고, 베풀 땐 상대방 민망하지 않게 처리한다. 아닌 건 단호하게 처리하는 솜씨도 탁월하다. 순해터져 당하고만 있는 성격은 아니다. 해야 할 말은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전했다. 불편한 걸 참으며 어영부영하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소리 소문 없이 돕는다. 미림이 가족을 못마땅해하면서도 갈 곳이 없자 수림이를 통해 머물 곳을 마련해 준다.


  '순례주택'이라는 공간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된다.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받는 곳이다. 이웃끼리 서로 돕고 다독인다. 자기만 알고 살다 공동체의 개념을 배운다. 순례 씨 한 사람이 뿌리는 파급력은 상당했다. 선한 영향력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순례 씨처럼 살지는 못하겠지만 순례 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기쁘게 나눔 하는 순례 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기 드문 건물주다. 순례주택같은 공간이 늘어나길 희망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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