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청소부 매뉴얼>,중 ‘청소부 매뉴얼’ 단편. 루시아 벌린, 웅진지식하우스. 2019.
단편 <청소부 매뉴얼>의 화자 매기는 청소 일을 하는 중년 여성이다. 매기가 일하는 부잣집 주인들은 좀 이상하다. 제슬 부인은 건망증이 심했고, 정신과 의사인 블룸 씨 부부도 무척 예민했다. 청소부는 고용주의 집 안팎의 속 사정을 모를 수가 없다. 부부 사이가 좋은지, 내연녀가 있는지, 정신이 오락가락 한지, 알코올 중독인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매기는 청소 일을 하며 집주인의 취향이나 그들의 민낯을 목격했다. 그녀는 상류층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사는 건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청소부인 매기는 '청소부를 위한 조언'을 만든다. 매뉴얼이 상세하다. '당신이 일을 철저히 한다는 걸 그들이 알게 할 것.', '마님이 주는 건 무엇이든 받고 고맙다고 말할 것', '원칙적으로 친구들 집안일은 절대로 하지 말 것.', ‘먼지를 털 때는 샴고양이 도자가 인형들의 위치를 바꾸어놓고, 크림 그릇은 설탕 왼쪽에 놓을 것’ (p.59), '고양이와는 절대로 친해지지 말 것.' 등이다.
청소부는 고용주의 지시사항을 따라야 한다. 때론 그들의 시중도 든다. 천식이 있는 주인에게 꿀을 넣은 차를 타주거나, 급여를 수표로 주면 현금으로 바꿔는 불편함도 감내해야 한다. 매기는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냉장고 성에를 제거하고, 냉장고 위도 청소한다. 와플 굽는 철판도 박박 닦고, 피아노 청소를 한다. 독자는 매기를 통해 청소부의 역할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매기는 가난한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부잣집 동네로 이동한다. 그녀는 자가용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버스 운전기사들의 횡포가 적나라하다. 버스는 제시간에 오지 않고, 운전사는 승객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버린다. ‘오클랜드 공업고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 라디오를 든 학생 20여 명’이 버스를 기다린다. 이어 버스가 도착하고 ‘절름발이 남자가 무진 애를 쓰며 버스에 오르자 운전사가 “에잇 염병할!”했고 남자는 깜짝 놀’(p.61)란다. 노동자들이 버스를 타고 일하러 가는 풍경이 스산해 보였다. 버스 기사들은 청소부들을 무시했다. 그들의 노골적인 폭력은 청소부들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버스에 몸을 싣고 일하러 가는 매기도, 다른 동료 청소부들도 처연하다. 버스기사가 청소부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그들의 고통이 더욱 선명하게 전해졌다.
<청소부 매뉴얼>은 매기가 죽은 남편 테리를 향한 애도사처럼 읽혔다. 매기는 남편을 잃고 네 아이를 키우면서 청소 일을 한다. 매기는 집주인의 수면제를 조금씩 훔친다. 그녀는 수면제를 왜 모으는 것일까. 매기는 남편을 따라가려 한 것일까. 수면제를 모으고 있지만 그녀는 이렇게 내뱉는다. "테리, 사실 나는 전혀 죽고 싶지 않아." (p.64) 삶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걸, 억지로 끊기 어렵다는 걸 매기는 알고 있다. 청명한 1월의 하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읽은 소감
-윤성희 작가, 황정은 작가의 초기 작품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오클랜드에 가서 버스를 타고 작품에 나오는 버스정류장을 경유하고 싶어졌다.
-경험해야 쓸 수 있는 디테일한 부분들이 엿보였다.
-묘사가 사실적이고 과하지 않아 좋았다.
-담백하게 썼다.
-다시 모든 작품을 찬찬히 읽어보고 싶어졌다.
-가정부, 청소부의 역할에 대해 간접경험이 됐다.
-청소부가 동전을 놓고 오는 부분에서 자기 증명이 보였고, 여유 있는 태도로 비쳤다.
-'블랙 유머'처럼 읽히는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그대로 투영했다고 보인다.
-책표지가 마치 에드워드 호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현대문학 단편 토론 모임
'청소부 매뉴얼'에 대해
-매기가 조언하는 '청소부 매뉴얼'을 읽으며 이 사람 정말 많은 일을 했구나 느꼈다.
-이것저것 여러 일을 한 경험 탓인지 사람에 대해 잘 아는 작가가 보였다.
-청소부 조언 중 강아지, 고양이에 관련한 부분을 읽을 땐 다방면에 많은 지식이 있구나 느꼈다.
-고양이는 아무나 따르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경계를 하거나 지켜보는 습성이 있다.
-매기는 일머리만 있는 게 아닌 사람을 관찰하는 시선도 예리하면서 따뜻했다.
-냉철과 따뜻함이 녹아 있는 부분이 작가의 매력 포인트 같다.
-화자는 절대 죽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왜냐하면, 생에 대해 애정이 높은 사람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자기가 바라본 세상이 '청소부 매뉴얼' 안에 녹아있다.
-'청소부 매뉴얼'은 매기가 하는 일의 지침이며 청소 일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준다.
-자시의 일을 기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는 자신(매기)을 향한 매뉴얼이기도 하다.
버스기사, 버스에 대해...
-버스기사의 삶도 거칠어 보였다.
-버스기사는 청소부 승객들을 무시하면서 자신이 그들보다 월등함을 증명한다.
-버스기사는 핸들을 잡았다는 이유로 승객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소설의 공간은 크게 두 군데로 나눠진다. 주인집, 버스 안.
-청소부들은 자가용이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빈곤층의 고단함이 읽혔다.
-빈곤계층과 버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교통수단이다.
-버스기사 얼마나 이들을 무시하는지. 버스 기사들의 행위를 통해 당시 청소부들의 위치가 어떤지 보여줬다.
-버스는 대중교통이고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다.
-버스기사의 무시를 견디며 부잣집으로 이동해야 하는 그들의 고단이 더욱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버스를 타면 위험에 노출되고, 버스를 타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 딜레마이다.
여성의 해방에 대해...
-청소부의 조언의 내용 중 “해방된 여성을 많이 볼 것”이라며 ‘여성의식 함양모임’, ‘청소부’, ‘이혼’의 세 단계를 말했다.
-이 중 왜 '청소부'가 들어갈까 고민했다.
-매기는 남편(테리)을 잃은 슬픔으로 수면제를 모으고 있는 거 같다.
-남편을 잃은 상실감이 진하게 전해져 둘의 관계가 유추되었다.
-반면, 남편을 '폐기장'으로 비유한 부분에서 다른 관계도 생각해 볼 여지가 충분했다.
-매기는 왜 수면제를 모았을까.
-'수면제를 모으는 여자' 책 제목으로 좋겠다.
-매기의 집이 묘사되지 않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테리는 카우보이 출신이었다.
-수면제를 모으는 매기를 보면서, 패배감, 무력감도 느꼈지만 동시에 살고 싶다는 욕구도 보였다.
-테리와 매기의 관계는 동지적 애증이지 않았을까.
토론후기
-김중혁 작가, 김연수 작가님께서 이 책을 그토록 칭찬했는지 토론하고 알게 됐다.
-짧은 단편에 층층이 쌓인 논쟁점이 많아 좋았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사회/계급에 대해 노골적인으로 서술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데뷔작을 기념하기 위해 전체 단편집의 제목을 '청소부 매뉴얼' 했다는 역자의 말이 와닿는다.
-토론하면서 삭막하고 건조한 부분이 더욱 노출되었다.
-사막 같은 황량한 분위기가 더욱 느껴졌다.
-척추옆굽음증에 시달렸던 작가의 고통들이 작품에 스산하게 목격됐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고뇌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부분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서 좋았다.
-삶의 무게에 눌려 애도하지 못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테리에게 '나는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매기가 좋다.
-토론 전에는 별 감흥 없던 책이 두 시간 토론 끝에 다른 책이 됐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발췌
청소부를 위한 조언 : 마님이 주는 건 무엇이든 받고 고맙다고 말한다. 나중에 버스에서 좌석 틈에다 버리고 내리면 된다. (p.48)
청소부를 위한 조언 : 원칙적으로 친구들 집안일은 절대로 하지 말 것. 조만간 우리는 그들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알게 되고, 그러면 그들은 우리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또는 그들을 너무 속속들이 알고 나면 반대로 우리가 그들을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p.50)
청소부를 위한 조언: 고양이는......고양이와는 절대로 친해지지 말것. 대걸레나 행주를 갖고 장난치게 내버려 두지 말 것. 사모님들이 시기할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절대로 의자에서 내쫓지 말 것. 그렇지만 강아지와는 반드시 친해질 것. 집에 들어가면 먼저 한 5분이나 10분 동안 강아지-체로키, 스마일리-를 쓰다듬어줄 것. 변기 뚜껑 닫는 것을 잊지 말 것. 늘어진 턱을 타고 흘러내린 털투성이 침. (p.53)
청소부를 위한 조언 : 당신이 일을 철저히 한다는 걸 그들이 알게 할 것. 일을 시작하는 첫날, 청소한 뒤 가구를 제자리에 놓을 때 잘못 놓을 것……. 5에서 10인치 정도 벗어난 곳에 놓거나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을 것. 먼지를 털 때는 샴고양이 도자기 인형들의 위치를 바꾸어놓고, 크림 그릇은 설탕 왼쪽에 놓을 것. 칫솔 놓아둔 위지도 모두 바꿀 것. (p.59)
청소부를 위한 조언: 앞으로 해방된 여성을 많이 볼 것이다. 첫 번째 단계는 여성의식 함양 모임, 두 번째 단계는 청소부, 세 번째 단계는 이혼이다. (p.55)
대부분의 나이 든 청소부들은 나를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많이 배운’ 여자라서 청소부 일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당장 다른 일을 찾을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나는 곧바로 알코올중독자인 남편이 자신을 넷이나 남기고 죽었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p.48)
이 버스를 탄 사람은 운전사를 포함해서 젊은 흑인 아니면 늙은 백인이다. 늙은 백인 운전사들은 야비하고 신경질적이다. 오클랜드공업고등학교 주위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들은 담배연기와 라디오 소리에 대해 불평하며 버스를 운전하다 거칠게 세운다. 갑자기 급출발하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아 백인 노부인들을 쇠기둥에 부딪히게 만든다. 노부인들의 팔은 금방 멍든다. (p.58)
-나는 연석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흰 유니폼을 입은 흑인 청소부 셋이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들은 오래된 친구들로 컨트리클럽 거리에 있는 주택가에서 일한다. 우리는 처음엔 화를 냈다……. 버스가 2분 빨리 지나가서 못 탔기 때문이다. 염병할 버스 운전사. 이 시간에 항상 우리 청소부들이 타는 줄 알면서. 42—피트몬트 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 줄 알면서. (p.48)
어느 날 밤 텔레그래프 거리에 있는 방에서 테리가 쿠어스병을 내 손에 쥐여주는 것을 느끼며 잠을 깼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테리는 네브래스카 출신의 젊은 카우보이였다. 그는 외국 영화라면 아예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자막을 빨리 읽지 못하기 때문이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
테리는 어쩌다가 책을 읽기라도 하면 한 장씩 찢어서 버렸다. 내가 집에 와보면 창문은 항상 열려 있거나 깨져 있었고, 방 안에는 찢긴 책장들이 세이프웨이 슈퍼마켓 주차장의 비둘기들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쓸리곤 했다. (p.49)
-33—버클리 급행. 33번 버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시어스 백화점에서 방향을 꺾어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데 그냥 지나쳐버렸다. 승객들이 벨을 눌러댔다. 얼굴이 붉어진 운전사는 차를 돌리기 위해 27가에서 좌회전했다. 그 길은 막다른 길이었다. 주민들이 집안에서 버스를 구경했다. (...)남자 승객 넷이 밖으로 나가 버스가 후진하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겨우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는 시속 80마일로 냅다 달렸다. 무시무시했다.(p.50)
-버스가 늦는다. 차들이 휙휙 지나간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부자들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절대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차를 타고 지나다니면서 늘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본다……. 사실 그들은 그냥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나 보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은 많이 기다린다. 사회보장연금 수령, 실직수당 신청, 빨래방, 공중전화, 응급실, 감옥, 기타 등등. (p.51)
-40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밀과 애디 빨래방’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밀은 조지아주의 어느 공장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탁기 다섯 대 위에 길게 누워 그 위에 커다란 티브이를 설치하고 있었다. 애디는 그 벽이 티브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스꽝스러운 팬터마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행인들도 지나가다 말고 우리와 함께 밀의 설치 작업을 구경했다. 우리 모두 티브이 화면에 반사되었다. 마치 티브이에서 ‘거리의 사람들’이라는 쇼를 하는 듯이. (p.51)
-한 번은 검정색 시퀸 블라우스를 가지고 가서 네 살 먹은 나타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달라 보이게 꾸밀 때 입는 옷이다. 블룸 선생님 사모님은 막 화를 내며 그건 성차별주의적인 옷이라고 투덜거렸다. 나는 잠시 내가 나타샤를 꾄다고 나를 비난하는 줄 알았다. 사모님은 블라우스를 집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나는 나중에 그것을 회수했다. 요즘도 달라보이게 꾸밀 때 가끔 그 옷을 입는다. (p.55)
-테리는 버스 타기를 거부했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레이하운드 정류장은 좋아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나 오클랜드의 그레이하운드 정류장은 좋아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나 오클랜드의 그레이하운드 정류장에 가곤 했다. 주로 오클랜드, 샌 파블로 대로에 있는 곳에 갔다. 언젠가 그는 내가 샌 파블로 대로 같아서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테리는 버클리 폐기장 같았다. 폐기장 가는 버스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뉴멕시코가 그리울 때 그곳에 갔었다. 삭막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 갈매기들은 사막의 쏙독새처럼 높이 날아오른다. 그곳에선 머리 위로, 사방으로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다. 쓰레기 트럭들은 천둥 소리와 함께 먼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지나다닌다. 회색 공룡들.
난 네가 죽는 걸 감당할 수 없어 테리. 하지만 너도 그건 알지. (p.57)
-젊은 흑인 운전사들은 빨리 달린다. 플레전트밸리로를 달릴 때는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어도 그대로 돌진한다. 그들이 운전하는 버스는 소리가 크고 담배연기가 자욱하지만 급격히 움직이는 일은 없다. (p.58)
-이 분야에서 내 걸작은 버크 부인 집 냉장고 위를 청소했을 때였다. 버크 부인의 눈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지만, 회중전등을 켜두지 않았더라면 부인은 내가 와플 굽는 철판을 박박 문질러 닦아 기름칠을 해놓고, 게이샤 인형을 수선해놓고, 회중전등마저 깨끗이 닦아놓았다는 사실을 놓쳤을 것이다. (p.59)
-난 너의 신원을 확인해주기를 거부했어. 그래서 아주 번거로운 일을 겪었어, 테리. 난 네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죽었다고, 너를 때릴까봐 두려웠거든. (p.60)
-테리, 사실 나는 전혀 죽고 싶지 않아.
40-텔레그래프. 빨래방 정류장. 밀과 애디 빨래방은 빈 세탁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연회의 테이블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즐거운 분위기였다. 그들은 창가에 서서 초록색 캔의 스트라이프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밀과 애디는 동전을 바꿔주기도 하면서 연회의 주인처럼 손님들과 어울렸다. 티브이에서 오하이오주립대 악단이 국가를 연주하고 있다. 미시간주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청명하고 추운 1월의 어느 날이다. 구레나룻을 기른 네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29가 모퉁이에서 연줄처럼 잇달아 나타난다. 거칠어 보이는 여자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시동을 켠 채 버스정류장 앞에 서 있다. 50년 형 다지 픽업트럭 짐칸에 탄 청소년들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는 마침내 울고 만다. (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