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한 문학가의 꿈 – 변신'
『카프카의 일기』, 프란츠 카프카, 2017. 솔. (944쪽 분량)
“책은 우리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20세기 현대 문학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성>, <소송>, <변신>, <시골 의사>등의 작품을 남겼다. 『카프카의 일기』는 1909년부터 1923년까지 카프카가 쓴 일기를 모아 엮은 작품이다. 일기 안에는 카프카의 하루 일상을 포함해 자신에게 영감을 준 소설이나 산문, 낭독, 연극 등이 언급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구상하고 습작한 내용도 들어 있다. 목차는 제1권부터-제12권으로 나눠져 있으며 서류 묶음과 여행일기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썼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집필하며 문학에 대한 숙명을 거부하지 못했다.
카프카는 41세로 폐결핵에 걸려 사망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모두 소각하라는 유언을 했다. 유언은 카프카의 가장 친한 친구 막스 브로트 Max Brod(1884-1968)에게 남겼는데, 브로트는 이를 따르지 않고 10여 년간 카프카의 작품을 편집해 출판했다. 브로트는 카프카가 쓴 짧은 산문, 장편소설, 잠언, 편지, 일기, 그리고 공문서 등을 총망라하며 출간에 힘쓴다. <카프카의 일기> 또한 막스 브로트에 의해 완성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카프카의 일기』 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온다. 카프카와 아버지의 관계를 살펴보면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장신구 사업을 했다. 카프카는 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11년>12월 14일 아버지는 오전에 내게 비난을 퍼부었다. 내가 공장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나는 나도 거기서 이익을 얻고 싶기 때문에 참여는 했지만 사무실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고 설명했다.’(p.237)
아버지는 계속해서 아들에게 욕을 했고 자신의 고통을 얘기했으며 자식들의 행복한 상황을 빈정거렸다. 아버지는 툭하면 양손으로 탁자를 치면서 “요즘 누가 그런 것을 알겠어! 애들이 뭘 알아! 그런 고생을 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어! 그런 것을 요즘 애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어!”(p.263)라며 프란츠 카프카를 괴롭혔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유년기와 카프카를 비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카프카는 불행이 밀려왔다.
카프카는 어느 날 우연히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를 구상했다. 이 소설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 가족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했던 갈등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 편지 형식으로 고백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카프카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주제다. 일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함께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자세하게 나온다.
또한, <카프카의 일기>에는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일기에는 카프카가 구상한 단편 초안이나 습작을 끄적거렸던 흔적이 상당 부분 나온다. 그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습작으로 이어졌다. 책은 카프카의 단편집 『관찰Betrachtung』에 있는 <불행>의 원고 일부와 「도시의 세계」 초고도 볼 수 있다. 「도시의 세계」는 카프카가 나중에 「선고Das Urteil」와 결합시킨 작품이다. <카프카의 일기>에는 습작했지만 출간되지 못한 책도 나온다. 「선고」를 쓴 과정 또한 디테일하게 적혀 있다. 1912년 9월 23일에는 이틀 동안 꼬박 「선고」를 쓰고 오래 앉아 뻣뻣해진 다리를 책상에서 꺼내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했다. 5개월 뒤인 1913년 2월 11일에는 「선고」를 교정하는 장면도 나온다.
1911년 11월 14일 화요일 일기는 막스 브로트가 브륀에서 강연을 하고 돌아와 잠든 모습을 보고 쓴 글이다. “마치 고통 없는 두개골을 감싸는 단단한 머리덮개가 속으로 더 깊숙이 잡아당기면서 빛과 근육들이 자유롭게 장난하도록 뇌의 일부를 바깥에 내놓은 듯했다.”(p.201) 그리고 그날 바로 일기 밑에 “노란빛을 띤 추운 가을 아침에 깨어났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을 써넣는다. 이 글은 카프카의 첫 단편집 『관찰Betrachtung』에 「독신자의 불행」이라는 제목으로 실린다.
책에 쓴 일기 날짜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카프카가 하루하루 일정 분량의 글을 적었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글을 쓰지 못하는 날에는 ‘1921년 6월 1일. 아무 글도 쓰지 않았음.“(p.347) 한 줄만 적혀 있어 괴로운 심정을 드러냈다. “1914년 4월 8일 어제는 한 단어도 쓸 수 없었다. 오늘 역시 더 낫지는 않다. 누가 나를 구원할까?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도 엎치락뒤치락하는 그 어떤 혼돈도 거의 볼 수 없다.”(p.424)는 표현은 글쓰기에 대한 압박이 상당했던 것으로 유추된다. 그럼에도 “오늘부터 일기를 꼭 쓸! 규칙적으로 쓸 것! 포기하지 말 것”(p.307)이라며 스스로 다짐하는 결의도 보인다.
그는 일(법률사무소 직원, 공장 관리감독)과 작가를 병행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글쓰기를 한 적이 없다. 글쓰기가 자신의 본질이라고 말하면서 아버지 때문에 작가의 삶을 살지 못했다. “나는 일기를 쓰는 것을 더 이상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를 확인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만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p.109)고 고백한다. 카프카는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정말 많이 삭제해버렸다는 사실, 그래, 올해에 썼던 글이란 글은 거의 다 지워버렸다.”(p.110)고도 했고, 때론 “옛날에 쓴 많은 이상한 글들을 태워”(p.327)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카프카가 자신의 글에 얼마나 엄격했는지 보여주는 태도다.
카프카 일기에서 이런 고뇌를 읽는다. 카프카가 독신으로 살며 글쓰기를 통해 길을 잃지 않으려던 분투를 말이다. 카프카는 “1913년 5월 3일 끔찍하리만큼 불안한 나의 내적 존재.”(p.460)를 힘들어했다. 이런 마음은 그의 몸을 괴롭혔다. 불면증, 신경쇠약, 소화불량, 위궤양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또, 카프카는 자주 ‘자살 욕구’(p.519)를 느꼈다. “<1912년>3월 8일 그저께 공장 때문에 욕을 먹었다. 그다음 한 시간 동안 소파에 누워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에 대해 생각.”(p.325) 했다고 썼다.
카프카는 ‘육체적 상태, 부모, 성격’(p.232) 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이며 문학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구실이라고 말했다. 글쓰기에 대한 끝없는 욕구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은 오늘 오후부터 계속 가지고 있었던 커다란 욕구란 내가 느끼는 이 두려운 상태 전체를 완전히 내 안에서 끌어내어 글로 쓰는 것, 그리고 또한 그것이 어떻게 심연에서 나와서 다시 저 종이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는지 등에 대해서 글로 쓰는 것.”(p.232)
일기는 사적인 공간이다. 어떤 말을 써도 상관없다. 그래서인지 카프카 자신만 알아보게 쓴 부분이 많았다. 이해되는 문장도 있지만 난해한 부분이 훨씬 많다. 하루의 일과를 적다가 소설 초고를 쓰기도 하고, 하루에도 여러 번 시간을 나눠 쓴 부분도 보였다. 일기에 소개된 상당수의 이야기들은 각주로 달려 있다. 각주와 함께 본문을 읽어야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카프카의 작품은 완벽한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난해성, 다의성, 다층적 구조로 카프카의 문학세계는 난해하다. “카프카적인!” (kafkaesque)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카프카적인'은 형용사로 혼란스러운, 섬뜩한 듯을 지녔으며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포감과 위협을 주는 무시무시함을 느낄 때 이런 말을 쓴다. '카프카적'은 그의 작품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카프카의 일기>도 마찬가지다. 15년에 걸쳐 자신의 생각과 습작을 대변한 일기도 난해하다.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일기'는 카프카의 문학적 정신세계를 투영하고 고백한 공간이므로 카프카의 내면을 연구하는 데 충분한 자료가 된다. 또한 당시 카프카가 읽었던 책과 연극, 오페라 등이 소개되어 있어 유대인 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카프카가 찰스 디킨스와 도스토옙스키, 괴테의 작품을 읽고 비평했던 부분도 있다. 독일 프리트란트와 라이헨베르크 도시를 비롯하여 프랑크푸르트 등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문학적 흔적을 탐방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프란츠 카프카의 일기에는 글을 매일매일 쓰겠다는 신념이 드러나 있다. 글을 써야 한다는 불안, 문학을 추구하겠다는 갈망, 일에 대한 고통, 아버지와의 갈등도 함께. 어쩜, 카프카는 일기를 쓰면서 그레고르 잠자처럼 ‘변신’을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다른 공간, 빈 일기장에서 그는 다른 존재이고 싶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