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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08. 2023

이슬아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 토론후기

샛별BOOK연구소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장편소설, 이야기장수, 2022. (309쪽 분량) 


<가녀장의 시대>는 시트콤 같은 드라마다. 가독성 높아 반나절이면 완독 가능하다. 작가 이슬아는 1992년생(31세)으로 헤엄출판사 대표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 반가운 마음에 토론을 열었다. 우선 제목부터 낯설다. 생소한 언어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책이 그리는 주제도 처음엔 어석거렸다.


 '가부장'을 '가녀장'으로 바꿨다.  지금까지 '가부장의 시대'라는 제도에 반감만 있었지 말 자체를 바꿀 생각은 못 했다. 소설 속 주인공 슬아는 '부모'를 부모라 부르지 않고 '모부'라 부른다. 아무렇게 부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말은 권력과 질서를 내포한다. 부모에 '부'가 먼저 나오는 건 아버지의 권력을 상징한다. 말을 바꾸면 인식이 달라진다. 인식의 변화는 행동을 변화시킨다. 내내 권력을 쥔 가부장의 시대는 사라졌다. 


한 집안의 권력은 무엇에서 나오는가. 자본주의 시대는 돈에서 나온다. 돈 버는 사람이 집안을 먹여 살리며 다스린다. 딸 슬아(30세)는 낮잠출판사의 대표다. 22살 때부터 글을 써서 집을 샀다. 슬아는 낮잠출판사 직원으로 엄마(복희/55세)와 아빠(웅이/55세)를 고용했다. 엄마는 정규직, 아빠는 비정규직으로. 셋은 팀이 되어 역할분담을 하며 슬기롭게 출판사업을 한다.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 강연자인 슬아는 스케줄이 빵빵하다. 복희는 음식과 세무, 메일확인, 출판사 재고 작업을 하고, 웅이는 청소와 운전, 배달업무 등 잡무를 처리한다. 돈을 버는 딸은 엄마, 아빠에게 월급을 준다. 권력을 쥔 자의 말 한마디는 질서가 된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온 것이다. 


[토론하는 밤길]에서 20-30대, 40-50대, 어르신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까 나눴다. 젊은 여성 작가이고, 등단하지 않은 작가의 장편소설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쓴 자전적 소설을 수용하는 태도는 연령마다 다를 것이다. 토론에서 "내 안에 꼰대가 얼마나 있는지 깨달았다"라는 소회를 밝힌 분이 계셨는데 솔직한 심정이라 생각한다. 또 가녀장의 시대가 아닌 '이슬아의 시대'라는 발언도 나왔다. 이 책은 자기관리 철저한 이슬아의 성공담이라는 농담도 했다. 문학보다 사업에 더 큰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는 말도 했다. 문학이란 원래 자본과 상극 아니던가. 얄밉도록 이슬아는 자본과 문학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토론해야 할 이유는 많다. 소설  문턱을 낮췄다는 것, 등단제도에 대한 도전정신, 자본과 권력의 상관관계, 복희의 상냥함, 슬아의 단단함, 웅이의 물렁함을 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대표이자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녀장의 무게는 상당하다. 슬아의 글은 식구들의 밥이 된다. 가녀장시대의 부작용을 나누는 것도 좋다. 가녀장이 또 하나의 수직적 구조가 아닌 혁신이 되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도 꼭 얘기해야 한다. 추운 겨울밤 토론하는 밤길에 잠깐 머물러준 샘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하뚜모양  @ OO 님사진



별점과 이유


3.5 특이한 책표지가 인상적. 전자담배를 들고 있는 가녀장. 특이했다. 다소 불편하고 거부감 드는 건 어쩔 수 없음. 


4.0 등단 작가의 작품이 꼭 훌륭하냐 그렇지도 않다. 등단하지 않은 작가의 소설을 눈여겨볼 필요도 있음. 


4.0 자전적 소설이라 거부감이 듦.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가 모호. 


4.0 등단작가는 아니지만 소설을 내고 대박을 친 경우. 이런 시도는 좋다. 


3.0 페미니즘을 살짝 비틀었지만 질서와 권력을 말하고 있다. 


4.0 내 안의 꼰대가 얼마나 있는지 깨달았다. 낯설지만 이슬아의 도발성도 엿보임. 


4.0 실제와 허구의 모호함이 있지만 굳이 사실과 허구를 분리할 필요도 없다. 가사노동을 인정하는 태도 훌륭. 타투를 하고 왔을 때는 다소 과한 반응을 보임.  


2.0  '가녀장의 시대' 제목에서 모든 걸 말해준다. 제목 스포주의. 가사노동을 임금으로 주자는 얘기는 식상. 노브라 또한 과한 에피소드. 그러나 가독성은 좋았음. 


3.5 페미니즘을 의도한 것은 알겠지만 과한 설정. 젊은 작가의 시선 탐색은 좋았음. 


그 외 




이슬아 캐릭터


30세/ 22살 작가로 데뷔. 비건주의자. 28세에 독립출판사를 차림. 22세부터 마감 있는 삶. 아침마다 요가, 스쿼트를 하는 슬아. 독서/ 영어공부도 열심.  새집을 출판사 겸 가정집으로 꾸밈. 원고료를 명시하지 않은 청탁메일이나 공인인증서 갱신을 싫어함. 집안 어디에서나 실내흡연(하루에 전자담배 5섯 개 정도). 고풍스러운 슬아의 서재와 침실은 2층에 배치. 출판사 사무실, 슬아의 옷방 등은 1층. 이슬아글방 운영.


강연장에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하여 모든 것을 체크하는 스타일. 모부와 합가하면서 살림노동 외주.<부지런한 사랑> 저자. 한때 데이팅 어플 중독자. 어플로 만난 사람들과 데이트를 하는 대표. 꼬깔콘도 10(?)개만 접시에 덜어 젓가락으로 집어먹는다. 7시 이후엔 절대 먹지 않음. 


-'집 밖에서 바라보면 가녀장의 서재에는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다. 그곳에서 반복하는 노동이 세 사람 몫의 생활비가 된다.'(p.35)

-가세를 일으키고자 하는 열망이 슬아의 가슴속에 꿈틀거렸다.(p.39)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감당하기 위해 자기 몸을 엄격히 관리한다.(p.41)

-반복하지 않으면 재능은 빛을 잃을 뿐. 즐기면서 계속 쓰라! 그는 아이들에게 탁월함과 성실함과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주입식으로 교육하며 수많은 십 대 작가를 배출하기에 이른다.(p.55)

-도서관, 백화점, 문화센터, 구청과 시청, 대학교, 심지어 군부대까지 행차하여 글쓰기의 순기능을 설파하는 것이다. 슬아의 강연은 평균 칠 분 내로 매진되고 수강생들의 만족도 역시 높다.(p.55)

-슬아는 강연자로서의 자신을 반쯤은 공연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멋지게 입고 강연장에 간다.(p.56)

-"오늘은 누구 만난대?" "나도 몰라." "피곤하지 않나?" "점잖아."(p.76)

-그가 수락하는 일들은 다섯 가지의 주요 동기 중에서 최소 두 가지를 충족하는 일이다. 돈, 재미, 의미, 아름다움. 한 가지만 충족하거나 아무것도 충족하지 않는 일은 빠르게 거절한다.(p.88)




장복희 캐릭터


55세. 슬아와 찬희의 모친. 낮잠출판사 정규직. 마트직원, 식당 종업원, 빵집 점원, 구제 옷 장수 등의 직업을 거쳤다. 유튜브로 산야초를 캐는 민간요법 시청. 화통한 성격, 낮잠출판사의 잡무를 모부가 처리(서점에서 들어온 도서주문을 확인/재고파악/파본회수/독자 문의 메일답장/회계장부 등). 10년 동안 시집살이. 11인분의 가사노동. 모르는 단어를 조금씩 틀리게 말한다. (인테리어/인텔리, 트럼프/트렁크, 시속 5센티미터/초속 5센티미터 등), 훌라춤을 배움. '당근 마켓에서 뽑은 올해의 인물' 복희.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 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p.40)

-어쨌든 그의 마음속에는 천 편 넘는 영화가 출렁이고 있다.(p.81)

-에스트로겐이 떨어지면 중년 여성의 몸은 지방을 태우는 능력과 근육을 만드는 능력을 점점 잃게 된다는 것이다. 복희는 속상해진다.(p.131)

 -그런 힘을 지니고도 그는 어쩐지 가모장 같은 것을 꿈꾸지 않는다. 가부장이든 가녀장이든 아무나 했으면 좋겠다. (p.142)




이웅이 캐릭터


-55세. 슬아의 부친.  문예창작과에 다니다 중퇴. 낮잠출판사 비정규직. 넥플리스 시청. 매주 복권사기. 투잡- 트럭일(1톤 트럭)/이벤트 장비 렌탈업체, 23살 빡빡머리 철이를 데리고 다님.  낮엔 슬아의 출판사를 위해 청소와 운전, 배달, 택배 발송, 세금처리 등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 안방은 지하에 위치. 하루에 한 갑 연초담배 /밖에서 피워야 함. 오전 업무는 출판사 청소, 작은 마당 관리, 오른팔에는 청소기를 왼팔에는 대걸레를 새긴 웅이. 반려묘(숙희와 남희) 챙기기. 온 집안 바닥청소, 설거지를 함. 


-'한때 웅이는 자동차 부품 상가의 직원이었고 수영 강사였고 노가다꾼이었고 목공소의 일꾼이었고 벽난로의 시공자였고 산업 잠수사였고 대리 운전기사였고 트럭 운전사였다.'(p.51)

-웅이가 떠나보낸 문학을 슬아는 힘껏 붙들고 있다.(p.53)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슬아, 웅이, 복희 캐릭터에 대해 나누기.

-'가녀장'이라고 부르는 용어에 대해.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라는 말의 함축에 대해. 

-"자신도 복희처럼 보는 건 많고 쓰는 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p.29) 라는 부분에서 여러분의 보는 것과 쓰는 것의 비율은?

-'낮잠출판사'의 운영방침에 대해. 

-생계를 책임지는 가녀장의 무게에 대해. 

-시아버지 중심의 가부장 체제에서 3대가 모여 살았던 복희의 10년에 대해. 

-가사노동에 월급을 산정해서 주는 슬아에 대해. 

-슬아의 데이트에 대해. 

-출판사와 가정집을 겸비한 공간에 대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슬아에 대해. 

-'부모'를 '모부'라고 부르는 부분에 대해.

-모부를 직원으로 둔 대표의 입장에 대해.

-가녀장의 시대는 올 것인가. 


발췌


슬아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열한 식구를 다스렸다. 한 명의 부인, 세 명의 아들, 세 명의 며느리. 네 명의 손주가 그의 휘하에서 지냈다.(p.7)


계약이 완료되자 슬아가 집주인에게 꽃다발과 카드를 건넸다. "좋은 집 물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주인은 놀라며 기뻐한다. "집 팔면서 꽃 받은 적은 처음이네."(p.15)


스물두 살에 데뷔한 이후 지난 팔 년간 밥 먹듯이 원고 마감을 해온 자다. (p.17)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p.23)


슬아가 잠시 안방에 들어온다. TV와 빈 라면 그릇, 빈 몽쉘 껍질을 앞에 둔 복희와 옹이를 본다. 그들은 좀 궁색해 보이는 자세로 바닥에 앉거나 누워 있지만 별다른 걱정거리는 없어 보인다. 적당한 포만감 속에서 나른한 모습이다. 어쩐지 야만적이고 쾌락적이다. (p.26)


그들이 일하는 작은 회사의 이름은 낮잠출판사다. 아무리 바빠도 낮잠은 꼭 챙기는 슬아가 운영한다. 출판사 대표인 그가 좋아하는 것은 책등 색깔별로 정리된 책꽂이, 서재에서 하는 실내흡연, 더 이상 교정교열할 것이 없는 원고, 벽돌색 립스틱, 치실질, 셔츠와 넥타이, 포마드로 머리 넘기기 등이다.(p.31)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이리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요할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음식을 만드는 데만은 천재다. 슬아는 복희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p.41)


-그만큼 공부를 했는디 입학금을 못 넣어서 얼마나 억울하겄어. 그만큼 공부를 했는디 입학금을 못 넣어서 학교에 못 들어가는 게 얼마나 분하고 슬프겄어. 다 무효가 되었으니 복희는 복희대로 다락에서 울고 나는 나대로 부엌에서 울었지.(p.108)


낮잠 출판사의 상여금 제도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아래 두 가지 항목이다.   

     된장 보너스   

     김장 보너스 (p.94)   


낮잠 출판사는 슬하의 필력뿐 아니라 복희의 살림력으로 굴러가는 조직이다. 슬아는 복희의 된장 연수를 된장 출장으로 명명한 뒤 출장수당을 지급했다. 수당은 회당 이십만 원씩이고 그것이 바로 된장 보너스다.(p.95)


자정 무렵 슬아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다운의 메시지다. "오랜만에 누군가의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보고 눈물이 차올랐어. 부엌에 가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럼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그냥 잘 먹겠습니다. 인사만 했어. 어무니한테 꼭 전해줘. 너무 맛있었구 행복했다구."(p.147)


복희가 기쁜 마음으로 무화과를 딴다. 복희에게 아름다움이란 계절의 흐름, 맑은 날에나 궂은날에나 자라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 웅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의 극치를 다 아는 가수의 목소리. 밥하고 글쓰는 두 여자. 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정하고 힘있는 언어, 그리고 동료가 된 모부의 뒷모습. 지구에서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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