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그러고 보니 나는 살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숱한 사람들이 제시하는 행복 매뉴얼에도 쉽게 동의하지 않는 쪽이었다.
행복은 개인에게 동일하게 작동하는 기제가 아니라고, 각자의 삶 속에서 다르게 번역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해 왔다.
행복이라니.
그게 뭔가?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를 소개받았다.
부제는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 >.
프롤로그의 문장이 흥미로웠다.
에릭호퍼는 이런 말을 했다.
" 행복 탐색이야 말로 불행의 중요 원인 중 하나다."
그건 괜찮다. 난 이미 불행하니까.
밑져야 본전이다.
- 에릭 와이너,『행복의 지도』 , p.13. 프롤로그 중에서.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이라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지점에서 그 원천을 탐색하는 일이 오히려 행복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며 그 사회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이유를 관찰한 에세이다.
에릭 와이너는 말한다.
“우리가 있는 장소가
우리의 사람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행복의 지도』, p.11
어느 곳에서라면 우리는 쉼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장소와 환경이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 속에서 행복이 길러진다면 그 출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사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행복 그 자체라기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삶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목차에 등장하는 나라들은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네덜란드,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몰도바, 태국, 영국, 인도, 미국....
이름만 들어도 지금 당장 서류와 컴퓨터를 덮고
이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캐리어를 끌고 떠나고 싶어진다.
지금 여기가 아닌 바로 그곳으로.
그곳 어디서나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반응하는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어쩌면 행복일 것이다.
『행복의 지도』 속의 행복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끝없는 관용 속에서 조금이라도 배려하고 나누는 행복을 추구한다.
스위스는 과하지 않은 기대 속에서 조용히 만족하는 삶을 선택한다.
부탄은 성장보다 균형을, 속도보다 마음의 상태를 묻는 사회다.
행복이 국가의 목표가 되어버린 나라.
그러나 그 행복 역시 근대화의 물결 앞에서 조금씩 균열을 겪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혹독한 자연 앞에서 함께 견디는 공동체의 연대를 행복이라 부른다.
이 나라들의 행복에는 공통점이 있다.
속도보다 마음의 상태를 묻는다는 것.
행복을 삶의 성취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더 가깝다는 것.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것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와이너가 이 여행 끝에서 얻은 결론은 단순하다.
행복은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는 답이 아니라,
각 사회가 오랫동안 길러온 삶의 방식이며,
우리는 그 방식 안에서 배운 만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몰라서 속고, 알면서도 속아주고,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관계를 이어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며 아이들을 이기적으로 양육한다.
늙어서는 죽지 않으려고 병원을 드나들다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지면 그제야 세상을 떠난다.
인생, 이렇게 놓고 보면 참 단순하다.
먹고살고, 사랑하며 살고, 일하며 살고, 견디며 살다가 죽는다.
누구나 그렇다.
그 참, 특별할 거 없는 인생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뭐 어떤가.
영화감독 홍상수의 영화들이 문득 떠오른다.
그의 영화에는 완벽하게 선하거나 극단적으로 악한 인물이 없다.
대신 이중적이고 흔들리며 갈등하는 우리 닮은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은 자주 어긋나고, 마음은 자주 바뀌며, 삶은 때로 구차하다.
그런데도 영화는 이상하리 만큼 편안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그 시간 속에서
그저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삶의 전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가 말하는 행복은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와 어딘지 닮아 있다.
행복은 대단한 성취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행복은
별일 없는 하루,
시시콜콜한 대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같은 자리에 앉아 시간을 나누며
서로 조금씩 이해하는 척하고
서로 조금씩 온기를 나누며
그렇게 사는 것 안에 깃들어 머문다.
시시콜콜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
그것도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