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영화로 듣는 재즈히스토리>, 영화 <라라랜드>
재즈도슨트 김효진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
건반을 터치하는 소리는 공연장으로 넓게 퍼진다.
기타와 베이스가 그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장난스레 폰을 꺼내 피아노연주자를 촬영한다. 곧이어 피아노의 목소리에 기타가 응답한다.
기타의 선율은 더욱 자유로워지며 음과 리듬은 풍성해진다. 그리고 멜로디를 베이스가 탁 잡아주는 순간, 공간 전체가 서서히 하나의 결에 맞춰 흘러가기 시작했다.
Joy of journey~
음악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여정 같다.
세 연주자는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보조인지 구분할 수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동시에 모두가 뒷사람의 호흡을 받쳐주고 있다.
피아노는 시냇물처럼 흔들리며 멜로디를 바꾸고,
그 변화에 기타는 한 박자 늦게, 그러나 정확하게
반응한다. 살짝 다른 음정을 올려 타고 들어오며
장면을 전환하자,
베이스는 깊고 단단한 음으로 흐름을 다시 고정시
킨다.
놀랍게도 이 세 연주자는 오늘 처음 만났다고 한다.
즉흥이었지만 즉흥 같지 않고,
따로 노는 듯했지만 완벽하게 이어지고,
각자의 개성이 서로의 여백 안으로 스며들며
결국은 하나의 서사처럼 하모니가 쌓여간다.
연주가 중반을 넘어가자
피아노가 갑자기 리듬을 흔들어 위트를 더했고
기타는 그 장난에 놀란 듯 짧은 프레이즈를 꺼내며 응수한다.
베이스는 둘의 장난을 알아듣고 조용히 리듬을 밀어준다.
관객들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가 오가는 것을 느끼며 음악 너머의 장면을 함께 경청하며 따라간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음악만으로 서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즉흥은 연습이 아니라 신뢰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재즈가 무어냐고 물어보면 '재즈는 즉흥연주다'
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드디어
체감했다.
주제를 만들고 쌓아가는 수다였다.
연주회에서 처음 접하는 재즈의 즉흥연주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재즈 안에서는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고, 협업이 가능해진다는 것.
서로를 제압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것.
재즈의 즉흥연주가 그 대답을 보여주었다.
자기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낸 음을
귀 기울여 듣고, 그 여백에 자신을 얹고, 때로는
물러서고 때로는 과감히 전면에 나서며 자신을
잃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한층한층 거룩한 음과
리듬을 쌓아낸다.
재즈의 즉흥연주가 보여주는 것은 각자의 개성을 듣는 태도, 기다리는 태도, 함께 만들어가는 협업의 태도다.
오래전 보았던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재즈 바에서 세바스찬이 말하던 대사.
"서로 경쟁하고 리드를 빼앗고, 또 타협하고! 정말 끝내주는 거죠!"
오늘 눈앞에서 연주되는 재즈의 모습을
가장 짧게 압축한 문장이었다.
세 연주자의 호흡을 보고 있자니 인생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통일된 리듬을 강요받는지 생각났다.
누군가는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천천히 쉬어가고,
누군가는 한참을 멈춰 서 있는데,
현실은 늘 말한다.
발맞추어라,
뒤처지지 마라,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재즈는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피아노는 자유롭게 선율을 흔들고
기타는 그 여백에 조심스레 그림자를 드리운다.
베이스는 낮은음으로 천천히 중심을 잡는다.
세 사람은 똑같이 연주하지 않아도
서로를 듣는 순간 이미 하나의 흐름이 된다.
우리 삶이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속도와 개성을 잃지 않은 채 서로의 리듬을 조심스레 듣는 삶.
비슷해지려고 애쓰기보다, 다름을 한 곡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재즈는 언제나 그걸 보여준다.
함께라는 것은 똑같아짐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이 부딪히고,
다시 어깨를 기대며 걸음을 내딛는 과정이라고.
재즈도슨트는 중간중간 영화 속 장면을 비추어 재즈히스토리를 보여주었다.
한 시대의 고통과 희망이 어떻게 재즈라는 음악 속에서 살아남았는지를.
라라랜드의 또 다른 대사가 떠올랐다.
“ 사람들은 누군가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
" 넌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데 재즈는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재즈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답다.
삶도 그렇다.
연주자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삐끗한 음 하나가
곧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 되고 새로운 미래의 멜로디가 된다. 따로 또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재즈처럼 열어가 보는 건 어떤가.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 마음이 따뜻해진다.
즉흥 재즈는 나에게 말한다.
“너는 너의 음으로 살아라.
그리고 누군가의 음을 들을 때 비로소 더 깊은 하나의 음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