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시노 니혼진, 교토에서 만난 사람들

- 교토에서 만난 사람들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by 뭉클

교토 자유여행 중이다.

아이들과 함께 걷는 이 도시는 유적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이 남는다.

‘야사시이(やさしい)’.

일본어로 친절하다, 다정하다는 뜻의 이 말이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이 여행을 이렇게 이름 붙이고 싶다.

야사시노 니혼진, 교토에서 만난 사람들

미소부터 먼저 건네는 사람들

숙소 근처 1분 거리에 작은 길조라멘 가락국수가게.

민머리의 주인장은 사람 좋은 얼굴로 우리를 보자마자 미소를 건넸다.

맛집답게 대기가 제법 길어 줄을 서 있는 내내 우리에게 다가와 “스미마셍”, “아리가또”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오히려 더 고맙고 민망해질 정도였다.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에 필요한 말은 많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 기다림이 길어지면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이조부, 이 데스”


기온, 타츠미다리 근처의 오코노미야키 가게.

오코나미야키가 꽃밭 같다.

딸아이가 연신 포즈를 바꿔 가며 음식 사진을 찍고 있으니, 남자 사장님은 딸이 귀엽네요라는 듯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러다 팔꿈치에 잔이 닿아 음료를 쏟았다.

우리가 먼저 연신 사과를 하는데,

사장님이 오히려 달려와 수건을 건네고 미소로 안심시키며 큰 소리로 반복한다.

“다이조부! 이 데스!”

괜찮다는 일본이 이렇게 뜻했나.

그 진심이 오히려 마음을 놓이게 한다.

음식만큼 따뜻한 사장님을 만났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도시의 어른들.

은각사 가는 버스를 친절히 안내해 주시던 어르신과

교세라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안내를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도움도 받았다.

중도에 버스카드를 분실해 현금이나 카드 결제가 가능한지 묻자, 바쁜 와중에도 손짓과 말로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결국 IC카드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지만.

버스 안에서 우리가 어쩔 줄 몰라 서 있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한국말로 말한다.

“현금 괜찮아요.”

순간 놀라고, 다음 순간 울컥했다.

뒤에 대기 중인 승객들에게 미안해 연신 고개를 숙이자 기사님은 마지막에 한국말 한마디를 이렇게 덧붙인다.

“또 오세요.”

관광객을 대하는 말이라기보다

이 동네 사람을 보내는 인사처럼 들렸다.


이번에는 교토 교세라 미술관 입구,

전시티켓을 고르지 못해 고민하자 데스크의

여직원이 차분히 설명해 준다.

심지어 딸애가 대학생이냐 확인하고 할인도

도와준다.

어찌나 상냥한지 고마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어설픈 일본어가 툭 튀어나왔다.

“야사시 데쓰.”

그러자 그분은 손사래를 치며 호호호 웃더니

민망해하며 내 손을 잡는 딸애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카아상가… 카와이이.”

우리는 모두 와아 하며 웃었다.

낯선 나라에서 어머니라는 호칭이 이렇게 정다울 줄이야.

이 장면들을 곱씹다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버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공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생존을 결정한 요인은 공격성이 아니라 다정함과 협력 능력”

이라는 핵심 논지를 진화생물학과 행동과학의 연구

성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이 책은 말한다.

인간의 진화에서 살아남은 쪽은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다정한 존재였다고.

공격적인 개체보다 상대의 신호를 읽고, 갈등을 낮추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개체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고.

이 관점으로 돌아보니 교토에서 만난 친절은

미담도 서비스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먼저 반응했고, 당황을 줄였으며,

상대를 곤란한 상태로 오래 두지 않았다.

다정함은 감정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말이

이 여행에서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친절은 제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

물론 일본의 친절은 매뉴얼과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사적인 온기였다.

기다려 주는 태도,

미안해하지 않게 만드는 말,

상대의 당황을 먼저 걱정하는 시선.

그것은 훈련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깝고,

습관이라기보다 문화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교토는 천년을 뛰어넘어 오래 남았다.


헬로키티가 그려진 하루카 열차,

청수사에서 사 먹은 당고와 말차아이스크림,

가와라마치 강가의 노을,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인상적인 교세라 미술관.

이 모든 장면 위에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겹쳐진다.

여행이 끝나면 장소는 흐려지고

결국 사람만 남는다는 말을

이번 교토에서 다시 확인한다.

야사시노 니혼진!

교토는 그렇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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