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1990년,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의 이야기다.
내가 대리였을 때의 일이다.
오전,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후배 S군의 거래처 원장님이었는데,
오늘 방문하면 전액 결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거래처는 수금으로 애를 먹이는,
이른바 “악성 거래처”로 업계에서는 거래를 꺼리는 곳이었는데
경력이 짧은 후배가 멋도 모르고 물건을 줘 버렸다.
약간의 경력만 있었다면 결코 거래를 하지 않았을 텐데
완전히 잘못 걸려든 것이다.
수개월 동안 대금 결제해 주지 않고 애를 먹이다가
갑자기 전액 결제를 해주겠다는 전화였다.
후배 S 사원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급히 출장을 서둘렀다.
“마음 변하기 전에 다녀오겠습니다!”
휙 뛰어나가더니,
이내 다시 돌아왔다.
“대리님! 비 엄청 와요!”
우산을 집어 들고 다시 나간다.
출근 전부터 내리던 비는 오전 내내 그칠 줄 몰랐다.
결국,
S 사원은 전액 결제에 성공했고, 그 거래처와의 거래를 정리했다. 끝?
이게 전부라면 무슨 이야깃거리가 되겠나.
S 군은 장대비를 뚫고 지하철을 타고
거래처가 있는 노량진역에서 내렸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당시 노량진역은 높은 곳에 있어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S 군의 눈에 들어온 노량진 일대는,
육교를 제외한 모든 도로가 물에 잠긴
대홍수 상태였던 것이다.
‘아, 당했다.’
방문할 수 없다고 확신한 원장님의 장난에 S 군이 당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S 군.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바지를 벗어 가방에 쑤셔 넣고
가방을 머리에 이고 물바다를 헤치고 거래처까지
무려 500m를 나간 것이다.
바지도 벗은 채, 물에 빠진 생쥐처럼 거래처에 도착했다.
“원장님, 돈 주세요!”
오직 놀리는 것이 목적이었던 원장님은,
S 군이 못 올 것으로 예상하고 결제할 돈도 준비해 두지 않았지만
S 군의 투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겨우 옆집에서 돈을 꿔
대금을 해결해 줬다는 이야기다.
이 일은 오랫동안 회사에서 회자되었다.
지금도 장마철이 되면 S 군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난다.
‘잘 지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