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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긴 시간 끝에 낸 결론, 존중의 지속

by 신화창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만나서

한평생을 ‘변함없이’

함께 살아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결혼도, 혼인신고도, 아이를 낳는 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40년, 50년,

또 그 이상을 언제나 ‘한결같음’은

어렵다.


옛날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처럼

쉽게 헤어지지 않았다고 자랑하지마라.

그것은 물리적인 것일 뿐이다.

화학적으로도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 없이 함께 살아가는 것,

아무 의미가 없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죽어도 저 사람과 같이 살지 않으리라 여긴다면,

그저 마지못해 참고 사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반려란,

사랑이 전제 되어야 한다.

하물며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함께란 ‘사랑’이 전제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평생,

사랑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


그렇다.

‘상호적 존중’이다.

오직 그 뿐이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모욕하는 상대를

사랑할 사람은 없다.


세상에 쉽고 만만한 사람은 없다.

사람을 쉽게 대하면,

꼭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물론,

모든 관계는 상호적이다.

일방적 희생은 없다.

평행선을 달리는 짝사랑이

결과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관계는 결국, 서로가 같을 때 건강하다.

‘이해’ ‘배려’ 이런 것들은

존중 속에 속할 뿐이다.


상호적 존중이 일상이 된 관계는 영원하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생각하고 할 수 있다면

영원한 반려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직 그 뿐이다.



제비.jpg


얼마 전에 멀리 사는 조카 커플이

결혼 청첩장을 들고 찾아 왔다.


함께 식사를 하고 덕담을 나눴다.

풋풋하고 예쁘고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이렇게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말해 준 것 같다.


꼰대라고 여길까봐 최대한 말을 아꼈다.

사실

축복 편지라도 써 주고 싶었지만

그것도 그만뒀다.

꼰대가 되기 싫어서.

그래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어짜피 둘이서 해결해야할 문제다.


진심으로 바란다.

둘이서 서로를 ‘존중’해서

해로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다시 태어나면 누구와 같이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내와 같이 살 것이라고

주저없이

대답할 수 있다.


언젠가

아내에게 똑같이

물어 본 적이 있다.

3초만에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 역시 그럴 계획이란다.


적어도

36년 동안은 잘 살고 있는 중이다.

노부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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