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후 40년 가까이 제약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렇게 출발시키는 관리자가 있다면 나쁜 사람이다.
물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생존하는 사람이 없기야 하겠냐만
성공 확률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무리 사자가 새끼를 키우는 방식이라지만
정말 무책임한 관리자이다.
영업본부장을 20년 했지만 장담컨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죽어서 천당 못 간다.
선택은 내게 달려 있었다.
남아서 이겨낼 것인가,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스트레스로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위장병을 얻어 속이 쓰렸다.
보무도 당당하게 상경했건만 이게 무슨 꼴이람.
별별생각이 다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돌아갈까. 그러나,
해보지도 않고 돌아가는 것은
자존심상 있을 수 없으며
한번 실패 사례를 남기게 되면
두 번, 세 번 반복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한번 부딪혀보자.
일단 거래처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거래장들을 보는 순간 심란하기만 했다.
다 싸서 버리자.
모든 실적을 신규로만 해야 했다.
매달 꼬박꼬박 부여되는 목표를
경험도 실력도 없는 신입이 당장 해내기는 어렵겠지만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달성하는 날이 오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몇 곱절 일을 많이 해야 했다.
어차피 서울엔 연고도 없으니
회사 외엔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으니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많은 신규를 했다.
비슷하게도 따라 오는 사람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나처럼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래가 크건 작건 따지지 않고
거래처 숫자 불리기에 집중했다.
서대문, 은평, 마포, 용산을
거의 버스, 지하철을 타지 않고 돌아다녔다.
문이 열려있는 의원이란 의원은 모두 들어갔다.
문전 박대도 처음 며칠은 마음이 상하지만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보통 평균적인 담당자가
50~60개 거래처를 보유하고
매월 20~30처 주문 나온다고 했을 때,
평균적인 담당자가 되기 위해서도
6개월은 걸릴 것 같았다.
다만 그사이에 잘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결론적으로 난 3개월 만에 다 따라붙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솔직히 다른 사람보다는
2~3배는 많이 걸었고 많이 만났다.
오늘의 교훈.
많이 걷고, 많이 만나면 무적이다.
아무에게도 지지 않는다.
다음 연재부터는 더 현장 중심으로 써 볼까 싶다.
아무리 40년 전 환경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는
디테일한 소재가 더 참고가 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