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을 줄이고,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윗분들은 하루에 열다섯 군데 이상을 다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하루 치 열다섯 군데 일을,
오전에 모두 끝내기로 하고 실천했다.
구의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촌까지 가서
오전에 열다섯 군데를 다 다니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무조건 10시까지 신촌역에서 일을 시작해야 가능한 일이다.
남들은 10시에야 겨우 회사 문을 나서는데 말이다.
그렇게 걸어 걸어서 연희동, 모래내 시장을 지나 수색까지
문이 열려 있는 의원이란 의원은 다 들어갔다.
3호선 일대도 홍제역에서 구파발역까지
마찬가지로 누비고 다녔다.
용산이든, 마포이든
매일같이 수만 보는 걷고 또 누볐다.
버스는 거의 안 타고 다녔다.
걸어야 놓치지 않고 다 들를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해도 안 된다면,
그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역시 젊음은 좋은 것이다.
피곤한 줄 몰랐다. 진짜.
이렇게 매일 스물다섯 곳 정도는 돌 수 있었다.
- 젊은 남자가 매일 같이 반복해 다녀도,
지쳐 쓰러져 죽지 않을 최대치 스물다섯 곳? -
거래처를 거의 못 받은 처지에서
반겨주는 곳이 있을 리 만무.
거의 잡상인 취급이다.
문전박대도 한 100번쯤 당하다 보면 아무 느낌도 없다.
매일같이 쫓겨나고, 또다시 가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나름의 활동 계획, 분류 기준도 생겼다.
이 집은 다시 갈 집, 죽으라 가야 할 집,
안 가야 할 집, 안 가도 될 집.
다시 그 동네에 갈 땐 조금 덜 무식하게 다녀도 되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거의 석 달쯤 걸린 것 같다.
선배들 말이 맞았다.
그 석 달을 못 견디고 많이들 그만둔다.
칭병하면서…….
한마디로 미친놈처럼 다녔다.
내 마음속에는 오직,
‘씨를 뿌리자, 씨를 뿌리자.
그리고 거둘 날을 상상하자’라는 생각뿐이었다.
운명은 하늘에 맡겨 놓고 영차영차,
모욕, 무시 이런 건 모두 미래를 위한 거름이라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