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 서울 필드 적응기(2)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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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을 줄이고,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윗분들은 하루에 열다섯 군데 이상을 다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하루 치 열다섯 군데 일을,

오전에 모두 끝내기로 하고 실천했다.


구의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촌까지 가서

오전에 열다섯 군데를 다 다니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무조건 10시까지 신촌역에서 일을 시작해야 가능한 일이다.

남들은 10시에야 겨우 회사 문을 나서는데 말이다.


그렇게 걸어 걸어서 연희동, 모래내 시장을 지나 수색까지

문이 열려 있는 의원이란 의원은 다 들어갔다.

3호선 일대도 홍제역에서 구파발역까지

마찬가지로 누비고 다녔다.

용산이든, 마포이든

매일같이 수만 보는 걷고 또 누볐다.

버스는 거의 안 타고 다녔다.

걸어야 놓치지 않고 다 들를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해도 안 된다면,

그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역시 젊음은 좋은 것이다.

피곤한 줄 몰랐다. 진짜.

이렇게 매일 스물다섯 곳 정도는 돌 수 있었다.


- 젊은 남자가 매일 같이 반복해 다녀도,

지쳐 쓰러져 죽지 않을 최대치 스물다섯 곳? -


거래처를 거의 못 받은 처지에서

반겨주는 곳이 있을 리 만무.

거의 잡상인 취급이다.

문전박대도 한 100번쯤 당하다 보면 아무 느낌도 없다.

매일같이 쫓겨나고, 또다시 가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나름의 활동 계획, 분류 기준도 생겼다.

이 집은 다시 갈 집, 죽으라 가야 할 집,

안 가야 할 집, 안 가도 될 집.

다시 그 동네에 갈 땐 조금 덜 무식하게 다녀도 되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거의 석 달쯤 걸린 것 같다.

선배들 말이 맞았다.

그 석 달을 못 견디고 많이들 그만둔다.


칭병하면서…….


한마디로 미친놈처럼 다녔다.

내 마음속에는 오직,

‘씨를 뿌리자, 씨를 뿌리자.

그리고 거둘 날을 상상하자’라는 생각뿐이었다.


운명은 하늘에 맡겨 놓고 영차영차,

모욕, 무시 이런 건 모두 미래를 위한 거름이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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