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각설이는 어디로 갔을까

옛날이야기(3)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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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70년대만 해도 거리엔 각설이 패가 흔했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 유랑하며 걸식하던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또 간혹 저녁때도 찾아오던

깡통을 팔뚝에 끼고 구성진 각설이 타령으로

구걸하던 그 사람들,

이제는 모두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스며들었을까.


우리 세대보다, 각설이를 제대로 기억하는 건

아마 바로 위, 50년대 이상의 선배 세대일 것이다.

그때 우린 너무 어렸고,

철이 들면서 그들도 서서히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나라의 형편이 개선된 덕분이겠지만

엄격한 단속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같이 찾아왔던 각설이 패들,

오늘은 나의 시선에 비친 그들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들은 적게는 두 명, 많게는 열 명 가까이 몰려다닌다.

의복은 남루했고 깡통을 하나씩 팔뚝에 끼고 있었다.

역시 모자의 나라의 거지답게 벙거지를 즐겨 쓰고 다닌다.


끼니때를 맞춰 여러 집을 방문하고

노래 서비스를 하고 잔 밥을 얻어가는 걸 봐서

여간 부지런한 게 아니다.

마치 게을러서 거지가 된 게 아님을 호소하듯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겨우 찬밥 한 덩이 얻어가는 게 고작이지만

공짜는 없다는 듯,

반드시 타령 한 곡조로 보답한 뒤에야 떠났다.


화음도 척척 맞고 곡조도 흥겨웠다.

시대 상황을 반영한 가사는 무릎을 치게 하는

촌철살인 한바탕 풍자극이었다.


과연 그랬다.

듣다 보면 절로 “옳지!” 하게 된다.




이쯤에서 60, 70년대 유행한 각설이 타령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 본다.


각설이 타령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일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일선에 계신 우리 낭군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이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이승만 씨는 대통령 이 주사는 부통령,

삼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삼천만의 우리 민족 대한독립만 기다리네,

사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사천이백칠십팔년 대한독립이 돌아왔소,

오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오천만의 중공군, 중공군도 물리쳤네,

육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6'25동란에 집 태우고 문전걸식 웬 말이오,

칠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70미리 함포 소리 삼천리강산을 에워싸네,

팔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판문점에 열린 회담 남북 대표가 나오네,

구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군대 생활 3년 만에 이등병이 웬 말이오,

장자나 한자 들고나 보니

장하도다. 우리 민족 평화통일 이루었네.




먼저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로 시작하는데

이 구절은 거지 주제에 “이리 오너라”할 수는 없으니까,

“여보세요? 저희들 왔어요.”정도의 인사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문전박대의 말이 없으면 한 곡조 구성지게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부른다.

나라가 독립을 하고, 전쟁을 겪고, 집을 잃고, 독재를 겪고

(이 주사 대목으로, 겨우 6급 주사 수준 밖에 안 되는

이기붕이 부통령이 되어서 전횡을 저지르는 데에 대한 풍자다),

억울한 경우를 당하기도 하고(군대 생활 3년 만에 이등병이 웬 말이오),

그래도 마지막엔 민족 평화통일을 이룬다는 희망까지 준다.


이들 노래를 아침, 저녁으로 들으며 살아온 민초들은

자기도 모르게 노동요로 써먹기도 했다.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가난한 집은 찾아가지 않고,

“없다, 가거라!” 하면,

두 말없이 돌아서고, 가진 게 없어도 예의염치를 알았던,

알고 보면 시대의 낭만 가객, 각설이 패.

가끔, 그 시절이 그립고 그 가객들이 궁금하다.




가난했지만, 당당하고 풍류 넘쳤던

그 시절 이야기가 새삼 재미있다.

잊기 전에 더 이어갈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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