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대한 기억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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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도 야구의 인기는 뜨거웠다.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긴 건 1982년이지만,

당시에는 고등학교 야구가 지금의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했다.

지역 기반의 경쟁의식이 인기를 견인했고,

출신 학교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했다.

전국대회 본선은 물론, 예선이나 지역 대회마저도

관중석이 가득 찼다.

야구장에 가지 못해서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이며 일희일비하던

그 시절 사람들이 눈에 선하다.


특이하게도,

지금과 달리 수도권 학교들의 실력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고,

지방의 강호들이 펄펄 날았다.

대구의 경북고, 대구상고,

부산의 부산고, 경남고, 광주의 광주일고,

경남의 마산상고, 전북의 군산상고.

이런 팀들이 이름을 날렸다.

어느 동네 사람이든 자기 지역의 야구가 최고라고 자랑했다.


돌이켜보면, 평생 야구에 잡혀 산 느낌이다.

어릴 땐 고교 야구, 어른이 되어서는 프로야구.


피가 끓던 어린 시절,

우리가 어디 야구를 보기만 했을까.

야구 놀이는 우리들의 주요 놀이였다.

축구와 달리, 야구는 장비가 많이 필요한 운동이다.

가난하던 시절,

그중에서도 더 가난한 동네에 살던 우리에게

장비는 꿈이었다.

탱탱 볼 하나만 있어도 어디서든 야구를 했다.

글러브 없이 맨손으로, 방망이는 막대기 하나 주워서.

운 좋게 연식 볼이라도 생기면

신문지를 겹겹이 말아 글러브처럼 만들어 썼다.

없는 대로 만들어 놀았던 그 시절 아이들.


지금보다 나았던 점이 있다면

자동차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어디든 공간만 있으면 야구장이 되었다.


해 질 때까지 치고받고 놀았던 기억.

아파트 공터에서 야구하다가 관리인에게 쫓겨 다니던 기억.

남의 집 유리창 깨고 도망쳤던 기억.

글러브 하나 간절히 갖고 싶었던 기억.


그 시절의 슈퍼스타,

황규봉, 이선희, 장효조 선수.


1970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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