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코스모스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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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논산훈련소 종교활동 이야기다.


군대서 종교활동은 자유다.

각자가 선호하는 종교를 선택해서

일요일 오전 종교 시간에 자유롭게 줄서서 가면 된다.


물론 종교가 없는 친구는 그냥 내무반에 남아도 된다.

연일 계속되는 강훈련에 내무반에서 쉬고 싶은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오산이다. 쉬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군대가 아니다.

무슨 작업 거리가 그리 많은지 자꾸 뭘 시킨다.

구대장들의 욕지거리를 들으며 작업을 하다 보면

다음부터는 무슨 종교든 꼭 참석하리라 다짐하게 된다.

저절로.

그들 말로는 그냥 내버려 두면 잡생각을 해서 안 된단다.


종교 행사에 참여하면 거의 두 시간을 그냥 쉴 수가 있다.

게다가 맛있는 떡이나 초코파이도 얻어먹을 수가 있다.

안 가면 작업할 게 뻔한데 누가 안 갈 수 있겠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훈련병 사이에선 여론이 분분하다.

어디 가면 뭘 준다, 어느 종교는 일어나라 앉으라 귀찮다, 등등.

아무래도 젊은 청년들이다 보니 믿음이 강한 사람은 적었다.

그냥 친구를 따라, 편하다는 곳에 가서 푹 쉬고 싶은 심정이다.


난 불교를 택했다.

신심은 얕았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수계까지 받았고

학생회 활동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불교로 가는 친구가 제일 많았고

자든 말든 내버려 둔다는 소문이 있어서가 정직한 표현이다.


‘가서 좀 자자.’


법당 이름이 호국 연무사였던가.

몇천 명이 들어갈 정도로 상당히 넓고 컸던 걸로 기억한다.


자리를 잡고 법회가 시작되자마자 대부분 훈련병이 잠들었다.

게다가 법사 스님이 졸리면 자도 좋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분명히.


손에 떡을 쥔 채 잠든 훈련병들의 모습.

천사 같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인원이 잠을 잤다.


민망하게도 아주 쿨쿨.


에라 모르겠다. 나도 잠들어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법사 스님이 소리를 지르셨다.


“여러분! 곧 가을입니다!

근사한 노래 한 곡 불러볼까요?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가을은 무슨, 연일 30도가 넘는 이제 겨우 8월인데.’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별수 있나. 모두 잠에서 깨어 따라 불렀다.

그런데 웬걸.


수백 명이 절간이 떠나갈 듯 함께 부르는 가을 노래.

소름이 쫙 끼쳤다.


‘와아…….’


40년도 넘게 지난 이야기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명곡이었다.

그리고 젊은 날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장씩 나누어준 명함만 한 호신불 인쇄물은

지금도 지갑 속에 곱게 곱게 간직하고 있다.

40년 넘게 지나 닳고 닳은 인쇄물엔 이렇게 적혀져 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일심으로 부르면

천수 천안의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의 원하는 바를

낱낱이 보고 들으시어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리라.”


“옴 아로륵계 사바하”


“진리는 영겁으로 변함이 없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갈 길을 인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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