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전쟁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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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이 생각났다.


19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우리는 “도시락” 세대다.

물론 학교에 식당이 있었으나

양은그릇 멸칫국물 우동 하나만 팔았다.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양도 적고 조악하기 짝이 없어

그것만 먹고 오후를 버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애들만 주로 이용했던 식당이었다.

그래도 전교생의 3할쯤은 이용했던 것 같다.


여기서 ‘어쩔 수 없는 애들’이란,

사정상 도시락을 쌀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이거나,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도시락을 도둑맞은 아이들을 뜻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도시락이 없어진 애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겠다.


어느 학교나 말썽꾸러기, 얄개들은 존재한다.

형편이 어렵지도 않은데 도시락은 싸 오지 않고

달랑 숟가락만 가지고 학교에 오는 애들이 있었다.

오전 시간 중 애들이 교실을 비우는

체육 시간, 교련 시간, 음악실로 이동하는 음악 시간이

얄개들의 주 활동 시간이다.

이들이 당번을 자처하고 교실에 남는 순간,

이때부터 우리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외부 수업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자기 도시락 점검이다.


여지가 없다. 무조건 일정 부분 비어 있다.

간혹 맛있는 반찬이라도 싸 오는 날이면

반찬 통이 텅 비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때 드는 낭패감이란…….

치사하게 먹는 거로 싸울 수도 없고

끙끙 속을 앓다가 식당을 찾게 된다.

우동 먹으러.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얄개는

각 도시락을 골고루 잘라 먹어

배를 곯는 아이가 없도록

일종의 배려를 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과 달리 우리는 긴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야간에 일과가 있을 때는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갔다.

집에 돌아오면 아홉 시가 넘을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도시락을 네다바이 당하면 정말로 난감해진다.


한번은 학급회의 시간에 이들을 집중 성토한 적이 있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얄개 무리가

익살 가득한 얼굴로 앞으로 나와 사과를 하고

다시는 안 그러마 다짐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들에게 밥을 빼앗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맛없는 진밥에 신 김치 쪼가리를 싸 오면 된다.

어머니께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도무지 이해를 못 하셨다.

그렇다면 그 녀석들 도시락까지 하나 더 싸 주겠다고 하셨다.

아....... 그게 아닌데.

그런다고 버릇을 고칠까.

온종일 재미있는 일만 찾아다니는 승냥이 같은 녀석들인데.


점심 먹다가 그 시절 생각에 혼자 히실히실 웃는다.

아름다운 시절, 얄개들이 보고 싶다.




얄개들! 밥은 잘 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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