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당시에는 일반 전화 이외에는 통신 수단이 없었다.
외근을 나가면 연락할 길이 전혀 없었다.
회사와 직원 간의 연결 고리는 오직 공중전화뿐이었다.
하루에 한 번, 회사에 전화를 걸어
긴급 전달 사항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외근을 나가서 회사에 연락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행방불명인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만큼 현장 요원들의 자기 관리가 중요했다.
9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삐삐라는 게 나와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깜깜이 상태가 지속되었다.
삐삐가 옆구리에 차이게 되니 편리함도 있었지만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시를 당한다는 구속감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삐삐 소리,
그러면 숨 가쁘게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전화를 걸면 야단을 들어야 하고
자유로운 활동에 익숙해진 일부 직원은
응답전화를 못해서 혼이 나는 사태도 종종 벌어졌다.
까딱하면 시말서등, 심각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보다 더 심한 직종은
바로 종합병원 하급 의사 선생님들이었다.
응급 상황 대처라는 면에서는 편리해졌지만
개인 선생님들은 안쓰럽게 되었다.
시도 때도 없는 호출로 대화를 이어갈 수도 없었다.
족쇄가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이어 90년대 중반쯤 핸드폰이 나왔다.
상당히 비싼 가격, 전파 부족으로 통화의 질이 좋지 않아
정착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에는 모두들 들고 다니게 되었다.
핸드폰이 생기니 진풍경도 많아졌다.
전화가 잘 터지는 곳으로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니고...
선배들 사이에서는 삐삐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 좋았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개인용 디지털 단말기, PDA가 나온 것이다.
감시할 수단이 더 늘었다.
漸. 入. 佳. 境 (점입가경).
각 회사들이 더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위치보고, 코스 활동 평가 등, 숨 쉴 틈이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가 왔다.
수년 전부터 직원들의 반발과 인권 강조의 분위기로
점차 위치정보 보고, 코스 관리는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사라졌으나
한동안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했다.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자기 관리 실패로 이탈하는 요원은 많았다는 단점은 있었으나
그 시절이 지금보다 에피소드도 많았고 인간적이었다고 여겨진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창의적이었다고 본다.
통신 수단의 발달은 분명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기도 했다.
자유와 책임이 균형을 이루어야 창의성이 살아난다.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인간성의 진보와 일치하지는 않더라는 말씀이다.
가치 있는 아이디어는 자유롭게 내버려두었을 때 나온다.
관리는 스스로 하는 것이며,
실패의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다.
그것은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