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쩌다보니 또래들보다 1년 늦게 입대를 하게 되었다.
스물둘이나 스물셋이나 거기가 거기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이를 의식하게 되었다.
1년 동생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동기로 지낸다는 현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뭔가 자존심 상하고 뒤처졌다는 느낌이 가슴을 찢어놓았다.
게다가 입대 첫날 계급도 없는 장정 신분으로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발가벗고 서있을 때 지휘를 하는 병장이 고등학교 때 짝꿍 성국이었다.
입대 절차가 진행되는 내내 죽으라 피해 다녔지만 수백 명의 장정들 속에서 성국이는 귀신같이 날 발견하고 말았다.
당시 제대 말년이었던 성국이는 여러 가지 도움을 주려고 애를 썼지만 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별일도 아닌 일인데, 그 “나이”때는 심각하고 쓰디쓴 사건이었다. 1년이 뭐라고...
2.
대학교 4학년 졸업시험을 앞두고 취업이 결정되었다.
일찌감치 분수를 알아서 대기업은 포기, 중소기업을 택한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취업이 결정된 것이다.
입사를 하고 신입사원 교육을 받다보니 동기들이 모두 한두 살 많다.
모두 더 조건이 좋은 직장을 찾아 헤매며 세월을 보내다가 갈 곳이 마땅찮아 마지막으로 선택한 직장이란다.
‘나도 1,2년 찾아 헤맬 걸 그랬나?’
딱 잠시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나이가 어리니까 마음이 편했다.
실수를 좀 해도 봐 줄 것 같고 자유스럽다.
한두 살 많은 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도 괜찮았다.
3.
직장에 들어와 누구보다 빨리 승진을 했다.
첫 진급인 주임 빼고는 항상 특별 승진을 거듭했다.
43세에 임원이 되었다.
초고속 승진이었다.
단독 사무실에다가 자동차가 주어졌다.
여기저기에서 온 축하 화분으로 사무실이 꽃밭이 되었다.
괜히 우쭐해지고 하늘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잠시 45세가 되니까 일곱 살이나 어린 생판 처음 보는 2세가 어딘가에서 날아오며 계약 종료란다.
이런...
다른 직장을 찾아다녔지만, 오라는 곳은 모두 부장 자리였다.
죽어도 가기 싫었다.
나 같은 에이스는 다운사이징 하지 않는다.
왜 부장입니까, 숱하게 물어봤다. 너무 어리단다.
자기네들 임원들 나이가 많아 반발이 예상된단다.
한 마디로 엄마 젖 더 먹고 오라는 뜻이었다.
전 직장에서는 30대 아들 낙하산이 40대 에이스를 내쫓더니,
새 직장에서는 어리다며 발목을 잡는다.
‘아... 고속 승진이 다 좋은 것은 아니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빨리 늙고 싶었다.
두 번째 직장에 임원으로 채용이 결정될 때, 누가 물었다.
“당신의 장점은 무엇이요?”
“젊음입니다.”
“마흔 다섯은 젊지 않아요!”
아이러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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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렇게 이 나이까지 왔다. 웃음이 나온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늘의 순리일 텐데,
상황에 따라 내 맘대로 생각하며 살아왔나보다.
100세가 훨씬 넘은 김형석 교수는 사십이나 적은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같이 늙어간다 할까.
젖비린내 난다고 저리 가라고 할까.
지금이 젊다고 생각하면 젊은 것이고, 늙었다고 생각하면 늙은 것이다.
재미있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