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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께 드리는 편지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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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을 처음 뵌 지도 사십 년이 다 되어갑니다.

정확히는 36년이고요.

그때 장모님께서는 50대셨고, 저희는 20대 후반이었으니, 세월이 참 빠르게 흐르네요.

세상에서 무엇이 빠르다 해도, 세월만큼 빠른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장모님께서 60대, 70대, 80대를 거치시는 동안, 저희도 함께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큰 따님을 성가시키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으신 모습,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유서 깊은 집안 출신답게, 큰 집안 살림을 흠 없이 꾸려 오신 기품에

마음 속으로 감탄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장모님께서 잘 가르쳐 보내신 따님 역시 지난 세월, 부족함 없이 잘 해낸 것 같습니다.


“아~ 그 어머니에 그 딸이로다!”


저희 두 아이, 즉 장모님 외손 둘이 세상에 나올 때,

지혜와 따뜻함으로 바라지해 주셔서,

아이 엄마는 후유증 없이 지금껏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저에겐 과분한 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멀리 사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언제나 최고 사위라며 남들 앞에서 추켜세워 주실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용상 처가는 늘 사람으로 들끓었습니다.

위로 7남매 어르신, 아래로 5남매.

외로운 집안 출신인 저로선 참으로 생경한 광경이었지요.

장모님께서 일구신, 늘 따뜻한 仁厚한 家風은 보기에도 좋았고,

온화하면서도 품격 높은 모습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살면서 많은 일들이 지나갔지만, 용상 처가는 늘 오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이제 모두 各各 成家하여 둥지를 떠났습니다.

모두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그대로 두고 갔음을 믿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찾아뵙고 전화 드리는 다섯 자제가 건재하지 않습니까.


장모님, 이제 우리 연세로 九旬이십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품 있고 멋지십니다.


하나 약속드립니다.

앞으로 10년 후, 장모님 백수연에는 칠십대 맏사위가 한복 저고리를 입고 춤이라도 추겠습니다.

함께 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그리 먼 훗날도 아니네요.


그때까지 저희와 함께 지금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계셔 주시면 좋겠습니다.


맏딸 남편,

맏사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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