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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 문주남

by 신화창조

1983년 육군 신병 훈련소 내무반장은 계급장이 없는 훈련병들에게는 “아버지”였다. 잠만 같이 안 자지, 밥도 같이 먹고 조교도 겸해서 훈련교장도 함께 누빈다. 훈련 4주 동안 하루 16시간을 함께 하는 보호자이자, 감시자이자, 책임자인 내무반장.


우리 내무반장은 하사 문주남이었다.

조교 내무반 서열은 잘 모르지만 말년 휴가를 다녀왔다는 걸로 봐서 왕고참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운이 좋은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 분이 우리 내무반장이었다.

당시는 PC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행정 서류를 손 글씨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는데 글씨에 자신 있던 난 훈련중대 서무계로 뽑혀서 내무반장과 가장 가까웠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 만큼 다른 병사보다는 잘 알 수 있었고, 가까워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년이라 병사들 하나하나의 사정에는 잘 끼어들지 않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불편부당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혜택도 없었다. ‘말년 몸조심’뭐 이런 것.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드러나는 정은 잘 주지 않았지만 사나이다운, 마초 같은 감동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41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런 글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그 사람 나이는 모른다. 나보다는 확실히 많을 것이다. 아마 두어 살 많지 않을까 싶다.

훈련소.jpg


첫 번째 에피소드, 반 수세식 화장실 청소가 시원찮지 않자, 직접 청소 시범을 보여준 뒤, 앞으로 자기 밥을 앞으로는 화장실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거기서 밥을 먹겠대. 그의 농담 같은 협박은 주효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남자의 마초가 뿜뿜, 하사 문주남.


두 번째 에피소드, 사격장에서 내가 곤경에 빠져 있을 때다. 다른 병사와 달리 나는 영점 사격을 계속 실패해서 무한 얼차려를 받고 있었다. 몇 번을 쏴도 내 표적지에는 어쩐 일인지 사격한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었다. 중대원 중에 거의 혼자 남아 있었다.

바로 그 때 바람처럼 나타난 하사 문주남. 자기가 한발만 가지고 올라가 영점을 잡아 오겠단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내 총을 가지고 쏜 그의 표적지도 텅 비어 있었다. 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훈련병 총은 월남전부터 사용해온 아주 오래된 M16이었고, 수많은 훈련병이 계속 사용하다보니 총열 속 마모가 심해 간혹 이런 총이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하사 문주남의 보증 아래 다른 총을 지급받아 단박에 영점을 잡았다. 총알 모자란다며 준 단 두발로. 사실 훈련장에서 내무반장이 끼어들 권한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처럼 나타나 나를 구해준 아버지. 하사 문주남.


세 번째 에피소드. 훈련 수료 시 나를 대대장 표창 대상으로 추천해준 것이다. 물론 서무병인 내가 표창장을 직접 썼다.

그런데 수상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심각한 O 다리였던 것이다. 양 무릎이 닿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엄청 안타까워하던 하사 문주남.


훈련소를 나와서 후반기 교육 6주를 더하고 자대에 가서도 몇 번 편지를 했다. 물론 답장도 받고. “짜식, 신기한 걸, 아직도 옛 애비를 잊지 않고.”로 시작하는 그의 편지.

“누나는 잘 있냐? 소개 좀 해 줄래?”

‘헉, 누나 시집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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