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내 짝꿍 영수.
훈련소 4주 동안 내 왼쪽에서 생활했던 동기다. 즐거웠다면 즐거웠고 힘들었다면 힘들었을 4주간을 함께 뛰고, 먹고, 잠잤던 영수. 세월이 너무 흘러 지금은 얼굴조차 잘 생각나지 않지만, 추억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영수, 이 친구는 시쳇말로 엄청난 고문관이었다. 거의 모든 훈련 종목마다 나머지 공부를 해야 마칠 수 있었고, 얘 때문에 단체 기합도 많이 받았다. 우리는 그 녀석 팔다리가 고무로 만들어진 줄 알았다. 꿈 뜨고, 버벅대고, 못 외우고……. 우리 동기는 모두 그 아이의 보호자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 애를 원망하지 않았다. 군대서 그토록 강조하는 전우애가 발동했을 수도 있지만, 민폐 동기임과 동시에 천성적으로 얼마나 착한지, 기술이 필요 없는 험한 일은 독박 쓰고 다하는 아이였다. 더럽고 힘들고 번거로운 일은 언제나 “제가 할게요”한다. 뜨거운 국 배식만 해도 그렇다. 8월 삼복더위에 이거 쉽지 않다. 그런데 언제나 웃으며 혼자 한다(뭐, 항상 나중에 국이 모자라 그렇지). 만약 정보가 없었더라면 딱 어디 두메산골에서 나무나 해서 먹고사는 무지렁이 같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영수는 정말 대단한 재원이었다. 우리 기수 속에는 카투사 병 선발 시험에 합격해서, 게다가 상위 100명에 속해, 한미연합사, 국방부, 육군본부 등 최상위급 부대에 갈 번역 병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영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걔들의 학벌은 실로 엄청났다. 거의 서울대, 연대, 고대였다.
영수도 연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다가 입대했단다. 영어는 특기병이니까 당연히 잘하겠지만(들어볼 기회는 없었다. 훈련장을 기는 우리가 영어를 들을 일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심지어 다른 외국어도 좀 한단다. 그것도 독학으로 익혔단다. 매일 취침 전에 속삭이듯 나에게 스페인어 한마디씩 가르쳐 주기도 했다. 덕분에 난 지금도 스페인어 인사말은 조금 외우고 있다. 그 녀석 어리바리한 걸 봐서 지금도 공부 잘하는 게 상상이 잘 안 된다.
매사 긍정적이고 착한 영수.
국 바가지 들고 쩔쩔매던 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너는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니? 보고 싶다. 영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