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이제 계절은 바야흐로 겨울의 한 가운데로 가고 있다.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다.
거리의 사람들은 옷깃을 싸매고 바삐 지나간다. 이렇게 날씨가 차가워지면 부쩍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벌써 4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다.
강원도 산골, 일병을 갓 달았던 졸병 시절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고단한 몸을 합법적으로 누일 수 있는 시간, 즉 취침 시간이었다.
일과가 끝났다고 하지만 매일 돌아오는 야간 보초가 남아 있어서 빠르게 잠들어야 했다. 군대서 잠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나.
당시 내무반 숙소는 이른바 철제 깡통 막사로 출입문 쪽은 외부 바람으로부터 매우 취약했다. 페치카 부근은 도시 아파트처럼 따듯했으나 문 쪽은 황소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벌판이었다.
그래서 추운 문 쪽은 졸병들 차지. 그것도 고참들이 넓게 넓게 잠자리를 차지하는 통에 일, 이등병은 똑바로 눕지도 못하고 ‘칼잠’을 자야 했다. 책꽂이의 책처럼 옆으로 누워도 자꾸 좁혀라, 좁혀라, 성화였다. 언젠가 세월이 지나면 우리도 저 가운데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꾹꾹 눌러 참고 견뎠다.
그 날도 똑같은 일상이었다. 몸을 바짝 옆으로 누이고 출입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을 견디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두 시간 후, 보초다. 빨리 잠들어야 한다.’
살짝 잠이 든 그 순간,
“이 세*들! 더 좁혀! ***!!”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냐? 에이 **’
나는 분명 마음속으로만 속삭였다. 그런데 아뿔싸. 이 잠결의 소리가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아~~~ 어쩌나….’
마침 불침번을 서던 고참 한 명이 그 소리를 들어 버린 것이다.
수습할 방법이 없었다.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수밖에.
밤 12시, 정해진 시간에 야간 보초를 서고 있던 시간, 근무지로 바로 윗고참 동기 몇몇과 우리 동기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구타가 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구타 및 가혹 행위 금지 일반 명령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
동기 다섯을 세워놓고 욕설과 함께 구타가 시작되었다. 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고를 쳤으니까. 그렇지만 동기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때문에 죄 없는 동기들까지 벌을 받으니 얼마나 미안했겠나. 달빛 아래에서 두들겨 맞으면서 계속해서 “미안해!”를 연발했다.
얼마나 오래 견뎌야 하나 암담해 하던 중, 갑자기 상황이 종료되어 버렸다.
동기 학현이가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버린 것이다. 깜짝 놀라고 겁을 먹은 고참들은 후닥닥 상황을 종료시키고 내려가 버렸다. 동시에 나의 미안함은 더욱 커지고 말았다. 대충 피를 닦고 일어나 막사로 돌아가는 학현이에게 다가가 “학현아! 미안하다. 어쩌면 좋냐….”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때 흙을 털며 일어난 학현이 왈,
“괜찮아, 내가 쇼를 좀 했지. 내 코는 특별해서 살짝만 건드리면 코피가 나와. 자동이야.” 살짝 윙크하며 내려갔다.
‘이런….’
서른 명 내무반에 동기 다섯, 많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매일같이 누구 하나는 꼭 사고를 쳤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고 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유를 묻거나 눈을 흘기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군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그야말로 진한 전우애 아닌가.
만약 전쟁이 일어나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면 바로 이것 덕분이다.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우리 동기들.
추운 겨울날,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희걸이, 영기, 희경이, 학현이, 그리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