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병원을 담당하고 새해를 맞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부담감과 새로운 기대감을 가득 안고 시무식장을 향했다.
그 사이에 주거지도 안양에서 서울로 옮겼다. 전세금이 모자라 불편을 감수하고 서울로 발령 받고도 거의 1년 동안 그냥 다녔는데 주위에서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부서장이 거의 반강제로 은행으로 끌고 가 보증을 서주고 전세자금 대출을 받게 했다. 굳이 안양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서울 시민이 되었다.
새해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과장 진급과 동시에 깜짝 보직 발령을 받은 것이다. 팀장(당시에는 ‘소장’이라고 불렀다.)이 되었다. 그것도 새롭게 팀을 만들어 주면서까지.
정말 놀랐다. 전례가 없는 파격이었다. 병원부에 온지 겨우 1년,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의아했다. 겨우 내 앞가림 정도 하는가 했는데 말이다.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뭔가 매우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국립 S 대학병원은 그대로 담당하며 추가로 원자력 병원도 담당하는 조건이었다. 신설 팀답게 조직은 단출했다. 후배 두 명이 우리 팀에 배치되었다. 두 살 아래, 세 살 아래, 영등포 시절, 함께 있었던 동생들이었다.
당연히 사석에서는 대리님보다 형이라고 부르는 게 편한 사이였다. 우리 나이로 34세, 32세, 31세. 새파란 놈 셋이서 팀을 이룬 것이다. 우습기도 하고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셋이서 몰래 키득거리기도 했다. 윗사람들의 생각을 전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우리들의 솔직한 마음은 그저 재미있기만 했고 뭘 하든 잘 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뿐이었다. 돌도 씹어 먹을 수 있는 젊은 아이 셋.
길고 길었던 관리자로서의 캐리어의 시작, 서른넷 분홍빛 1994년이 그렇게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