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ttom Up
1994년부터 무려 6년간 혜화동 대학로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하기 시작되었다.
처음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병원을 담당하게 될 줄 몰랐다.
이전 5년간 얼마나 많은 인수인계를 경험했던가. 짐을 쌓는 게 팔자인가 생각했다.
국립 S병원.
하루라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정문 수문장 아저씨가 병원 직원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오늘은 출근이 늦으시네요?”
“아, 네.”
나의 영업은 먼저 제품의 실시간 움직임 파악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 병동을 돌면서 주치의 선생님들을 만난다. 나의 영업철학은 Bottom Up 이다. 위를 먼저 공략하는 방식은 생명이 짧다. 그렇다고 Top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바닥을 다져 놓고 그것을 무기로 위를 설득했다.
직접 처방하는 수십 명의 주치의 선생님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소통을 우선 했다. 그런 영업 방식은 고달프다. 온 병원을 누비고 다녀야 가능한 일이다. 밤이 아니고는 주치의 선생님과 길게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다.
생각보다 경쟁사들은 이런 영업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내 눈에는 그들이 게으르고 손쉽게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렇게 일하는데 월급을 주나?’
그들이 그렇게 일할수록 내게 유리했다. 병원 한 군데를 ‘6시 내 고향 오만보기’처럼 돌아다녔다.
우리 회사 제품은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중환자 중의 중환자에게 처방되는 제품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든 제품을 다 알 수는 없다. 환자를 위해서도 제조사의 조언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고 대학을 나온 주치의 선생님들은 웬만해서 일개 제약회사 담당자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지 않는다. 공기 같은 친분을 쌓아야 한다.
병원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다니며 밥을 같이 먹고 오며가며 목캔디나 볼펜을 들이밀고 틈만 나면 불쑥불쑥 나타나야 한다. 우연을 가장하고 지하철도 함께 타고 사담을 나누며 공기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공기 같은 사람이 되고나면 대화는 원활해진다.
“이럴 땐 어떻게 하죠?” “이 약은 왜 이렇죠?”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와야 한다. 가고 또 가고 만나고 또 만나다보면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친구가 된다. 외국어 공부할 때 귀가 터지듯 말이다.
그렇게 6년을 하루 같이 일을 했다. 영업은 마법이 아니다. 신비한 재주는 없다. 단지 좋은 제품을 알아주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서 담당하고 1년 후, 우리 제품은 해당 분야에서 90%를 점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쟁사가 바보는 아니었다. Top Down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