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시절은 일 많이 한 빛나는 시간이었다.
신나게 일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다 보니 너무 일벌레같이 보일까 조금 염려가 되기는 한다.
이쯤에서 자백할까봐.
S 병원에서의 30대, 한창 놀기 좋아할 나이였는데 어디 24시간 일만 했을까.
온종일을 병원에서 보내다 보면 짬이 나는 시간이 있다. 대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시간이 종종 빈다.
주치의 선생님도, 외래 보는 교수님들도, 수술장에 들어가신 선생님도 이 시간은 대개 바쁘다.
우리 같은 업자들이 이 시간에 눈치 없이 눈에 띄는 건 예의도 아니고 영업에 득이 되지도 않는다.
특별한 용건 없이 아무나 찾아다니면 자살골 넣기 딱 좋다.
열심히 한답시고 눈치없이 돌아다니다 낭패 당하는 경쟁사 동료들도 여럿 봤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병원 구내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거나, 더러워진 구두를 닦거나 타사 담당자를 만나 정보교환을 빙자한 수다를 떤다.
잘 찾아보면 원내에서 이 시간에 즐길 거리가 많다. 환자와 직원을 위한 영화 감상회도 있고 불우 환자 돕기 바자회 같은 것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병원 로비에는 커피숍도 있고 은행도 있다. 복잡한 병원에서 진료과를 찾지 못해 헤매는 서툰 방문객을 도와주는 봉사를 해도 된다.
바야흐로 아무리 바빠도 거의 매일 3시간의 여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아주 많이 피곤한 날이면 환자 대기 의자에 앉아 잠깐 졸기도 하고 혼자서 이후에 만날 고객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도 하고 제품 공부도 한다.
현장은 살아 있는 생물이다. 사무실에서 아무리 전략을 짜고 나와도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있다. 막상 부딪쳐 보면 전혀 상황이 달라질 때가 많다. 잠깐 졸면서 세운 현장에서 세운 전략이 100시간 사무소 전략보다 효과적일 때가 많다는 이야기다.
영업은 지구전이다. 반짝 능력이나 행운으로 한순간 성취를 맛보더라도 끝끝내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치면 안 된다.
눈 쌓인 들판을 홀로 다니는 외로운 늑대는 지치면 죽는다(너무 거창한가?).
아무튼 즐거운 마음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쉴 땐 쉬어줘야 한다. 지치지 않고 즐겁게 오래 하는 담당자가 성공하는 담당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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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는 병원을 살짝 떠나서 이 세 시간을 주로 보낸 병원 앞 대학로 6년을 이야기하겠다. 하루 세 시간씩 6년을 보냈다고 생각해봐라. 정이 들겠는가, 안 들겠는가.
물론 1990년대 대학로 이야기다. 미화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이야기할 테니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