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까지 12시간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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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들은 이야기다.

한 시대의 문화가 '완전히' 교체되려면 200년이 걸린다고 한다.


고려는 500년을 이어온 불교 국가였으며, 조선은 철두철미한 유학자에 의해 설계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유학 선비들은 부패한 고려 사회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청산하기 위해 당시 사회에 유교 문화를 심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1392년에 건국한 조선에서 불교문화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신사임당이 왜 결혼을 하고 계속 강릉 친정에서 살다가 아드님이신 율곡 선생이 다 성장하고 나서야 시집인 이원수 공의 본가로 왔을까. 어디 율곡 선생만 그랬을까. 명문 사대부 모두 그런 관습을 따랐다고 한다. 율곡도 퇴계도 모두다 말이다. 이건 추상같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는 관습의 힘이었다. 율곡도 퇴계도 모두 1500년대 사람들 아니었나.


조선이 망하고 정확하게 116년이 지났다. 200년이 지나야 관습이 완전히 청산된다니 아직 84년이 남았다. 58%가 지났으니 아마도 그 정도 문화가 바뀌었다고 본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42%는 좋든 싫든 아직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무관하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장장 닷새를 쉰다. 이 역시 42%의 힘이다. 무시하지 못할 유교 문화가 여전히 살아남아서 현대의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모시고 세배를 하러 길을 떠나야 한다.


1987년, 39년 전, 서울에 막 터를 잡고 처음 맞이하는 설 연휴였다. 물론 결혼 전이었다.

미처 귀성표를 못 구한 나는 차를 가지고 있는 상사의 차에 동승을 해서 귀향하기로 했다.


본가는 대구였다. 상사의 차엔 대전에서 내리는 경리부 직원 두 명도 탔다. 회사는 중부고속도로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구의동에 있어서 평소 같으면 20분정도면 톨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 땐 무려 4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20분길을 네 시간에.


대전에서 동승자를 내려주기까지 8시간, 새벽이었다. 운전자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더는 못 가고 길가에 주차를 하고 쪽잠을 잤다. 그렇게 대구에 도착하니 12시간이 지난 다음날 아침이었다.


요즘은 아무리 막히고 밀린다 해도 서울에서 대구까지 12시간 걸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길이 좋아져서 그렇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자동차 증가를 고려하면 그게 그거다. 그만큼 덜 귀성하니까 그렇다는 게 정설이다.


요즘은 명절이라고 해서 평소 연휴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속도로도 그렇고 길거리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1910년 조선 망국 이후 200년을 기준으로,

1987년은“겨우” 35%를 지났을 뿐이었고, 지금은 “무려” 68%나 지났다.

그 차이, “겨우”와 “무려”

이게 곧 1987년과 2026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망하고 200년 후인 2110년엔 난 몇 살인가.

몇 살이 되어 있건 간에 이 세상에 없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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