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대전 고속버스 터미널 앞 민속주점에서 있었던, HM의 L과의 면담 내용을 아침 댓바람에 오너가 출근하자마자 보고를 했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내용이 아니라 변화를 꾸려갈 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HM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오너가 직접 발상하고 끌고 갔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드넓은 회장실에서 말단 부장과 회장이 아침부터 오전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몹시 궁금하고 불안했으리라.
길고 긴 대화였지만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우리도 해보자, 할 수 있겠다.”
오너도 나를 대전에 내려보내고 나서 혼자서 HM의 오너를 만나 밥을 먹고 왔다고 했다.
HM 오너는 서로 다른 대학 출신이지만 우리 오너의 약사 후배로서 회사 설립연도가 같고 설립 당시 서로 돕고 도와 개인적인 친분이 끈끈했다.
“우리 둘이 가지고 온 정보를 기반으로 회사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라, 프로그램이 나오면 당신 힘으로 밀고 가라. 변화의 모든 콘트롤 타워는 당신 중심으로 짠다.”
둘의 회의는 오너의 지시를 마지막으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 끝이 났다.
끝나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기대로 가슴이 쿵쾅거렸다.
지난 수년 간 꿈꿔왔던 일이 내 손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분명 마케팅 부장 신분에 미친 짓 같았지만, 이루어 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을까.
회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변화를 끌어갈 마케팅부 직원들을 불렀다.
자초지종을 쭉 설명했다.
“재미있지 않겠냐?” “재미있다고요?” “그게 마케팅부 일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핵심을 찌르는 반항(?)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것은 마케팅부 본래의 일이 아니다. 마케팅부는 품목 프로모션 부서다. 이런 건 기조실이나 뭐 그런 부서의 일이다. 임원들이 벌 때 같이 달려들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런 부담스러운 일을 맡아왔냐…….’
대충 그런 말이었다.
큰일 났다 싶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고 참모 모두가 의욕을 갖고 매달려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일인데 기대하지 않았던 심한 저항이었다.
복잡하게 꾸미지 않고 내 생각만 말했다.
“나를 믿냐?”
“믿긴 하지만…….”
“부서를 떠나 옳은 일이냐? 아니냐?”
“옳은 일이긴 하죠.”
“그럼, 해 보자! 날 믿고, 재미있게 해 보자.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아.. 어쩔 수 없죠. 뭐, 부장님이 똥바가지를 쓰고 오셨으니 좋든 싫든 끌려가야죠.” (살짝 감동)
이렇게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개싸움의 서막이 올랐다. 서기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