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반 친구들(3)

사진 작업

by 신화창조

1970년대 사진 작업은 오직 피사체를 찍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필름 현상, 인화까지 거쳐야 우리가 마침내 찍힌 사진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피사체를 발견한 즉시, 그 모습이 변하기 전에 촬영해야 하고, 암실로 돌아와 필름을 현상해 1차 확인을 하고 확대기를 통해 작은 사이즈로 인화해서 작품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 결국, 원하는 사이즈로 인화해야만 모든 작업이 끝난다.

그러나 현대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는 얼마나 편리해지고 좋아졌는가.

모든 게 컴퓨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 화질은 얼마나 좋아졌는가.

그러나 그만큼 사진이 흔해져 마구 소비되는 경향도 부인할 수 없다.

그 시절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귀하게 다뤄지고 대접도 받았다.

또 필름 한 장 한 장 전부 부족한 비용이다 보니까 피사체 한 장을 찍더라도 소중히 다뤄야 했다.


당시는 흑백 사진의 시대였다. 우리의 한계는 흑백까지였다.

당시 컬러 장비는 너무 비싸 우리가 넘볼 영역이 아니었다.

컬러와 흑백은 서로 장단점이 있다.


비록 흑백 사진뿐이었지만(컬러는 사진관 힘을 빌려야 해서 잘 안 찍었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련의 수고스러운 과정을 모두 거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철학으로 고등학생에 불과했지만 모든 과정을 손수 했다.

그것이 우리의 자부심이었다.

당시 대구 시내 어떤 고등학교 사진부도 그렇게 하는 곳이 없었다.

24장짜리 필름 한 통을 다 소비해야 작품 하나 건질까 말까 한 우리들 수준.

방과 후 통과한 여러 작품을 모아 테스트를 거쳐 인화를 마치려면 밤을 꼴딱 새워야 할 때도 많았다.

인화 작업은

빛이 최대한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좋으니 심야에 해야 한다.

사진이 나오면 조심스럽게 인화지를 씻어야 한다. 표면에 묻은 정착액을 없애야 하니까.


우선 선발대를 수돗가로 보내 바닥을 깨끗하게 씻는다. 잘못해서 이물질이 남아 있으면 사진 표면이 다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씻는다. 암실에서 말린다.

학교에서 잘 수는 없으니 통금을 피해 적어도 11시 전에는 집에 가야 한다.

그래서 하룻밤에 5~6점 인화가 한계다.

말려 놓은 사진 걱정에 잠이 안 온다. ‘잘 나와야 할 텐데.’

밤에 멀쩡했던 사진이 낮에 보면 다를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스와 입자 문제다.

기스는 수돗가 이물질이 남아 있어서 인화지에 몰래 생채기를 냈을 경우고, 입자 문제는 정착을 소홀히 해서 일 경우가 많다.

문제가 있을 경우는 찢어버리고 다시 해야 한다.

보통 5장당 1장은 버린다. 운이 나빠서 모두 버린 때도 있었다.

전시회 등에 작품을 걸어야 할 때는 목수가 되어 액자도 손수 만들어야 했다.

물론 업체에 맡길 수도 있었으나 우리는 배워서 우리가 직접 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처음부터 끝까지’가 우리의 신조였으니까.


더 디테일한 이야기가 많은데 많이 줄였다.


사진과 상관없는 사람들은 아마도 많이 지루해할 것 같아서.

재미있게만 쓰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예순다섯 먹은 일곱 명 동기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 말이다.

아~~ 동기 같은 1년 후배 승환이도 있네!

미안.




이 글은

흰머리가 성성한 늙은 애 여덟이 주인공이다.

난 이 애들이 인제 그만 늙었으면 좋겠다.


내가 수줍음 탓에 알리지 않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지만

언젠가 그 애들(늙은이들?)이 읽어줄 거라고 상상하며 쓰는 글이니 우리끼리만 재미있고 다른 독자는 재미없을 수도 있다.


재미없는 소재도 재미있게 만들도록 제 작문 실력이 확! 늘어날 때까지


독자 여러분! 지루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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