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월(寶月) 큰 스님
소백산 초암사(草庵寺) 보월(寶月) 큰 스님
남의 허물 말하지 않고,
덕담과 감탄사로 법문을 대신 하시던 염화미소(拈華微笑) 가득한
키 작고 등 굽은 할머니 비구니 스님.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비구니 스님이라서 그런가.
이 땅에 명망 높은 스님도 많지만 비구니 스님 이야기는 별로 없더라.
내 소견이 비좁은 때문인가.
씁쓸하다. 대덕은 비구의 전유물인가.
20년 전 내가 뵌 비구니 스님,
난
보월 큰스님에게서 부처의 모습을 뵈었다.
어떤 수행을 하셨고 어떤 스승을 모셨고 어떤 제자를 두었는가,
이런 것은 전해들은 바 없다.
하지만 세속 연세 95, 당신에게서 분명 큰 스님의 모습을 뵈었다.
無慾하시고 걸림 없고 慈愛하신.
불현 듯 당신이 떠올라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어떤 기록도 자취도 없다. 섭섭하고 씁쓸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일체의 남김없이 세속의 허물을 벗었음은
스님 당신 입장에서
수행을 완성하신 것이니,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150센티도 되어 보이지 않은, 단아한 체구에,
결코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덕담과 감탄사로 모든 말씀을 다하시는,
염화미소(拈華微笑) 가득한 비구니 스님.
폐허가 되어 버린 소백산 깊은 골, 풀과 암석만 남겨진 초암사 절터에는
1000년 전, 의상 대사의 희미하고 믿기 힘든 흔적에 의지하여,
당신의 信力만으로, 탁발만으로 전국을 돌아 초암사를 불사하셨단다.
세수 68세부터 95세까지.
스님이 열반하시고 나는 한 번도 초암사를 찾지 않았다.
덕 높은 선님 머무시다 열반하신 향기 품은 암자.
스님의 흔적 없음이,
철없는 중생의 흰 걱정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키 작고 등허리 굽은 할머니 큰 스님이 따 주시던 박카스 한 병,
좋은 사람 되라는 덕담 한 말씀.
그리고 그 감탄사, 염화미소가 그립다.
올 여름에는
스치듯 꼭 한 번 초암사엘 다녀올 생각이다.
소백산 계곡을 돌고 돌아, 들풀들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꼭 한 번 다녀오리라.
덕지덕지 달라붙은 중생의 묵은 때를 계곡에 씻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내 것도 다 내려놓고 돌아올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