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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화선 Nov 25. 2020

<상상훈련> 부자가 되면 내가 원하는 삶

경제적 자유가 주는 즐거움이 좋다.

배고플 때 밥을 먹듯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들로 능동적 삶을 살아가는 게 즐겁다. 시간과 돈에 대한 제약이 없으면 외로워질 줄 알았는데 베푸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나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들과 조찬 모임을 하고, 삶의 방향을 잡게 된 성공한 제자들과 막걸리를 함께 부딪친다. 감사함에 부족한 시간이 미울 뿐이다.


<후원> 좋은 스승이란 뭘까? 제자가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고 정신적 지지를 해 주는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내 스승은 군대 대신 징역이 어울린다며 2년만 다녀오라 지시를 내렸다. 운동선수들은 몸으로 대화를 하므로 머리는 비어있다고 생각했는지." 넌, 나랑 깡패 하자"던 스승. 금메달이 아닌 별을 달아주고 싶던 스승은 날 제자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군대 대신 깡패를 해야 했다고 말했을 때 깨달았다.


만약 그때 좋은 스승을 만났다면 어떤 길로 갔을까? 스포츠 중계를 보다 보면 문득 생각이 든다. '프로까지 온 저 친구들은 어떤 스승을 만났을까?' 궁금해졌다. 훌륭한 선수와 스승. 둘의 상관관계는 제자가 비틀어져도 바로 잡아주고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리더십과 포용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난 스승들을 찾아준다. 운동, 미술, 음악, 각종 예체능부터 공부까지 학생들의 길을 안내해줄 선생님이 있는 곳이라면 재능 있는 학생들이 끝까지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내비게이션처럼 구석구석 너희 갈 길이라고 안내까지 못 하더라도 어떤 스승을 만나야 가진 재능을 활활 불태울 수 있는지 안다. 프로가 되고 수준급 실력을 갖추어 막걸리를 들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아 부자가 된 것에 후회가 들지 않는다.


<여름 캠핑>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이면 두 달간 낯선 곳으로 여름 캠핑을 간다. 획일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다. 위대한 탄생에 출연한 <악동뮤지션> 남매. 몽골 초원에서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뛰놀아 유명 남매 가수 된 악동뮤지션을 보면서 알았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무궁하다는 것을. 자신을 낯선 세계에 부딪혀 깨지고 단단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그릇이 달라져 가는 걸 알게 된다. 수학을 공식으로 풀지 못해도 괜찮다. 어떻게든 풀어낼 것을 알기에.


덕분에 우리 부부도 <아름다운 한국, 맛있는 한국>을  여름이면 기다리게 된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부모와 멀어진다던데 오히려 낮에는 사람에 대하여, 밤에는 인생에 관해 토론의 시간이 많아졌다. <인간의 존재와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넷이 해가 갈수록 별빛처럼 깊어지는 대화가 즐겁다. 굳이 캠핑하는 이유는 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거부하고 자급자족 느낌의 삶을 살고 싶었나 보다.


<겨울 골프> 세계 100대 골프 클럽에 방문한다. 삶이 좀 더 즐거워지려면 세 가지를 해야 한다고 방송에서 봤다. 현지인과 대화가 가능한 외국어, 수준급 악기, 프로 정도 실력의 운동, 우리 가족은 준 프로 이상의 골프 실력을 가지고 있다. 겨울이면 PGA 선수들, 골프를 사랑한 아마추어들이 선정한 세계 명문 골프장을 방문해 골프를 즐긴다. 자연스럽게 세계여행이 아이들은 어느새 하나, 둘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었다. 사회 각층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였다. 어쩔 땐 미국 클럽에서는 타이거 우즈, 영국에선 로리 맥킬로이랑 동반 라운드 하는 행운이 함께 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라운드 하는 경험은 짜릿하다.


<창업멘토> "형님, 조찬 모임 꼭 하시죠" 말하고 후배는 시골에서 도박 빚을 지고 야반도주했다. 생활비에 쪼들리던 후배를 도와줄 수 있었던 건 없었다. 우리 가게에서 잠깐 일을 시키고 아르바이트비를 챙겨주는 게 최선이었다. 가끔 술 한잔 하면서 힘듦을 나눌 때 꼭 성공하면 형님과 조찬 모임을 하고 싶다고 취하면 이야기했던 후배였다. ' 돈이 나만 많으면 뭐하겠냐. 주위 사람이 가난하면 나랑 놀아주겠어' 앞 길을 뚫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식당과 부동산 개발업의 성공 방법을 가르쳐준다. 자립하고 일어설 수 있게 쉬운 길을 알려 줄 것이다. 난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손을 잡아 줄 것이지 다른 선배들처럼 사다리를 걷어차지는 않을 테다. 조찬 모임에 참여하는 후배들이 많아지고 우리들 대화는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다.


<좋은 동네 연구소> 도시로 올라가고 싶다고 노래까지 부르며 떠나려 했지만 결국 살기 좋은 곳은 여기였구나 깨닫게 된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가장 행복한 곳. 살기 좋은 곳이란 생각은 내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어떻게 하면 살기 좋고,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우리 동네 , 좋은 동네 연구소>  설립해서 직접 운영할 것이다. 맑은 물에 고기가 모여들듯이 동네에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면 질서 없고 어지러운 동네가 될 수도 있지만 연구소에는 대응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각박하고 사람 냄새나지 않는 AI, 전염병에 안전하지 않은 시대지만 이웃이 함께 손 잡고 웃고 즐기는 동네가 된다면 여기가 서울 아니겠는가. 이젠 우리 동네가 모범사례가 되어 도시 사람들이 '시골로~시골로'를 외친다.


젊을 때 난 시골이 싫었다. 학교 때 좋은 스승이 뭔지 몰랐다. 부모와 여행을 다녀 보지 못했다. 후배들이 울면서 도망가는 걸 도와줄 수 없었다. 우리 동네 시골에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걸 깰 수 있었던 건 경제적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 곳에 있었다. 고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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