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유치원 갈 때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는 순간이라더니. 평소에도 천천히 다니지만, 아이들이 타고 있을 땐 더 천천히 다닌다. 차를 타면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그렇지 않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가끔 내 차에 타는 사람들은 답답해한다. 아내조차도.
사고 순간 아내는 뒷좌석의 아이들에게 갔다. 사고가 난 줄 인식하지 못했던 아들이 엄마의 걱정과 불안을 보더니 울음보를 터트렸다. 딸도 덩달아 서럽게 운다. 아내는 참 느린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들 문제에서만큼은 육상 선수보다 빠르다. 난 사고 순간 아이들을 쳐다보기만 했는데, 아내는 "괜찮아. 놀랬지. 아픈 데 없어?" 등 걱정의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며 아이들에게 갔고 상대 운전자 표정까지 읽었다. 대단하다. 엄마의 힘.
평소와 다르게 침착했다. 교통사고 났을 땐 싸워야 한다고 들었다. 사고 현장에선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영웅담을 들어왔는데도 이상하리 차분했다. 큰 사고가 아니었고, 아이들이 다치지 않은 게 확인되어서일까?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숨을 고르고, 기다렸다. 상대 운전자는 내가 들이받았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걸 확인했고 급할 게 없다고 본능적인 제어를 했나 보다. 감정이 앞서면 안 된다. 사고 순간 싸움이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차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주변 사무실 사람들이 나왔을 때도 차 안에 있었다. 우린 서로 창을 통해 말없이 바라봤다. 시간이 흐르고 감정보다 이성이 나가보라고 이야기할 때 "괜찮으세요. 우선 보험에 연락하시죠" 사고 수습을 했다. 상대 운전자는 말없이 전화한다. 다시 조용한 침묵.
보험회사 직원들이 왔다. 좌·우 차로이고, 중앙선이 있고 없고, 어려운 용어로 설명을 한다. 결론만 말해달라고 했다. "네, 6 대 4입니다." 결론만 들으니 난 가해자였다. 가해자가 된 그제야 상대방의 몸 상태를 걱정하고 다친 데는 없으시냐고 공손하게 묻기 시작했다. "이마를 쿵 하고 쪘다"라며 괜찮다고 하신다. 아마도 상대 운전자도 묵힌 그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가해자 된 그제야 명함을 받고 몸 상태 확인하시고 아프면 병원에 가시라고 공손히 당부했다. 다친 데 없는 걸 서로 확인하고 대물만 처리하기로 합의를 마쳤다
수습이 끝나고 다시 차와 아이들을 살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인명사고로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 차는 K7과 아내 이름을 따서 케봉이다. 케봉이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병원에 간다. 잦은 병치레 한번 없이 잘 지냈고 튼튼한 발이 되어주었는데 괜히 울적해졌다. 아이들 대신 케봉이가 아픔을 다 받아낸 것처럼 느껴졌다. 케봉이는 다행히 엔진까지는 안 갔으니 내 심장은 여전히 튼튼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병원에 가는 케봉에게 건강하게 만나자고 울먹였다. 아이들이 불안해할지도 모른다고 아내 친구가 다독여주던 손길이 내 맘까지 어루만져 주길 바랬는데. 자동차를 바라보는 눈은 모두 다르다.
공업사에 수리가 들어간 이틀. 아이들은 대차 해준 차를 안 타겠다고 버티고 걸어 다니겠단다. 케봉이 언제 오느냐고 아직도 병원에 있냐며, 보고 싶다고 아이들이 울기까지 한다. 그런 맘을 알았는지 수리가 일찍 끝났다. 아이들은 이틀뿐이었는데도 "보고 싶었어. 괜찮아."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정말 아이들은 어떤 맘일까? 본인들도 교통사고 경험자인데 케봉이만 크게 다쳤으니 미안했나 보다. "미안해 괜찮아?" 묻고 또 묻는다.
"케봉이가 너보다 언니야." 딸에게 서열을 정해줬었다. 언니라고 부르진 않지만 언제나 다정하게 " 케봉아" 부르며 찾는다. 아들도 누나처럼 가족의 구성원을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한다. 교통사고 후 우린 더 돈독해졌다. "아빠 우리도 카니발 타고 싶어" 매일 조르던 녀석들이 요 며칠 조용하다. 케봉이가 우릴 지켜줬고 대신 병원에 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가족이 될 수 있냐고 감정에 북받쳐 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당연하지. 아픔을 함께했잖아" 또 괜찮냐고 언니를 토닥여준다. 자동차를 소비재로 생각하지 않고 사랑해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 사고 이후에 알 수 있었다. 가치는 우리가 정하는 것임을. 5년만 더 함께 하자. 건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