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곳에 살고 있어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눈을 감아도 파도가 들리고, 바다가 그려지는 익숙함을 거부하고 무작정 달려본다. 발길 닿는 데까지 정하지 않고 가다가 바다가 보이면 멈추기로 했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바다는 달라 보일 것이다. 그래 봤자 서해였다.
춘장대에서
"와~ 아빠 영자 할머니네에서 본 바다 같아" 우리 집은 서해, 할머니 집은 동해다. 지안이는 할머니 집에서 본 바다의 기억이 더 좋은가보다. 뭐가 똑같냐고 물었더니 엉뚱한 소리 대마왕이다. " 응 영자 할머니네에서 봤어. 바다에서 이렇게, 이렇게 생긴 새에게 먹이 줬잖아" 바다의 어떤 점이 좋냐니깐 갈매기랑 놀았던 기억을 재빨리 꺼내 놓는다. "할머니네는 파랬어. 여기도 파란색이야." 정말이다. 서해도 오늘은 동해처럼 온통 파랗다.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분명 같은 바다인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어떤 게 하늘이고 바다인지도 헷갈린다. 바다와 하늘은 멀어질수록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유독 맑은 하늘때문에 우리가 동해에 왔나 착각이 든다.
춘장대에 15년 만에 왔다. 20대에 3년이나 막노동을 하며 나름 청춘을 보낸 곳이라 반가웠다. 가까운데도 아이들을 데리고 춘장대에 한 번도 놀러 오지 않았다니 미안한 맘이 든다. 하늘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는 질문에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있다고 대답했었다. 바다도 똑같은 바다라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그러니 집 앞바다로 만족하고 살았던 게 아닐까. 보이는 게 바다였으니.
우리가 왔어
"다른 곳에선 다른 느낌을 받아요. 좋잖아요" 바다가 좋기보다는 다른 곳에 왔다는 게 좋다는 건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아내가 밉다. 제발 풀어서 말해달라고 했는데도 늘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도 엄마를 닮아서 아빠를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말을 풀이하는데 난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엄마와 아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바다를 보고 갈매기 먹이 줬던 걸 생각하는 게 당연할 수 있는데 뭐지 의심하고 다른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아이들은 백사장을 걸었고, 생을 마감한 조개를 찾았다. 특별한 놀이를 하지 않았다. 그냥 겨울바람을 느꼈다. 겨울바람은 빨갛다. 아이들이 얼굴 빨개졌다며 서로 놀린다. "아빠! 바람도 색깔이 있나 봐" 리아는 빨개진 지안이를 보며 웃는다. 바람은 색깔이 있다고 말하는 딸아이는 추위보다 바람이 좋나 보다. "인사를 하러 왔나 봐" 말해줬더니 정말이냐고 반갑다고 오히려 아들 녀석이 신났다. "오 예~ 바람아 나한테도 와"우리는 바보같이 즐겁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자연이 말을 건다. 자동차는 가족이다. 집에, 가게에 인사하자. >이런 이야기 하며 놀 때가 신난다. 곧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아이들은 아빠의 동심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엉뚱한 아빠랑 동화를 쓰고 있었으니깐.
아내는 춘장대에 우리가 왔다고 흔적을 남긴다. 물이 들어와 금방 없어질 거라고 말했더니 그런 건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란다. 그렇지. 꼭 의미를 찾는 건 아니지만 아들이 궁금해한다고 다시 말해줬다. "아들아, 너도 와!" 아들은 골똘히 생각하며 바라만 본다. '엄마랑 누나도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 말하는 것 같다.
이제는 각자만의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함께 있다가 지친 기색이 보일 땐 "각자만의 시간을 갖자. 충전합시다" 말하며 누군가 방전이 됐다는 걸 알려준다. 충전하고 다시 뭉치면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아주 잠깐의 시간과 서로 간의 공간은 많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온다.
각자 충전을 하고 선물을 들고 왔다. 바다에 왔는데 겨울 바닷바람이 반갑다. 우리 손과 발, 얼굴은 온통 봉숭아 물들이듯 빨개졌다. 겨울의 바다는 파랗지만 바람은 빨간색이다. 각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모두 빨개진 자신을 데리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