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참았어. 엄마, 아빠 없어서 지금까지 참았어." 다섯 살 된 아들이 대변이 급한데 참았다고 말한다. 아빠를 보자마자 응가 마렵다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참았으면 얼마나 참았겠어.'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어? 누나한테 닦아달라고 하면 되잖아" 똥을 참으면 배 아프다고 누나에게 닦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데 왜 그랬냐고 물었다.
"아니야. 누나가 닦으면 잘 못 닦아서. 어~ 어. (말이 생각보다 느릴 때 자주 표현한다) 냄새났어" 누나가 닦아주면 확실히 닦지 못한다고 그때의 기억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 팬티에 묻고, 이불하고 소파에서 놀아서 모두 냄새가 났던 상황과 '응가' 마려웠던 기억을 불러낸다.
"그러면 아빠한테 전화해야지. 참으면 배 아프잖아" 혼 내려 한 말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일하고 있어서 바쁘잖아" 다섯 살 아이의 말이라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다섯 살 녀석이 부모가 바쁘다고 제때 '응가'를 못했다는 사실에 슬펐다. 아빠 엄마가 바쁜데 나 때문에 '응가' 닦아주려 집에 오는 건 뭘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코로나 상황이 심해졌다. 점심은 식당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 집에서 둘이 잘 지낼 수 있다는 말을 믿었다. 아이가 배 아픈 것보다 부모 눈치를 보느라 생리적 현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니 미안했다.
조카가 생각났다. 동생이 아파서 6개월 정도 삼촌 집에서 함께 지냈다. 우리 큰 딸과 동갑내기 남자아이다. 씩씩하게도 상황을 이해했고, 또래 사촌들과 잘 지냈다.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나 어린아이다. 응가를 참았던 아들 녀석 때문에 조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가 생각난다.
엄마의 손길과 아빠의 보살핌을 삼촌과 외숙모가 충분히 보듬어준다고 생각했다. 여섯 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부모의 부재를 생리적인 현상에선 표현할 수 없었다. 유치원 친구네 놀러 갔을 때였다. 외숙모도 없는 곳에서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참다가 실수를 했나 보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서 가만히 눈치만 보던 걸 다행히 유치원 교사 출신이던 친구 엄마가 상황을 잘 마무리 지었다.
집에서 외할머니랑 사촌들과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조카는 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확 풍기던 냄새를 맡고 난 조카를 안아주었다. 조용히 "삼촌이랑 가자. 손잡아" 아마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지내는 것 같지만 아니란 걸, 조카랑 아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불안함은 생리적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불안함을 이겨내려 악쓰다가 실수하는 상황이 차라리 괜찮은 건가? 뒤처리가 미흡해도 낯선 사람에게 맡긴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란 걸 내 경험으로도 이해된다.
고등학교 때 양팔을 다쳐서 깁스를 했었다. 대변이 급해도 참았다. 어머니는 식당 일로 병원에 오지 못했다. 친구 한 명이 학교 끝나고 매일 병원에 왔는데 난 그 시간만 기다렸다. 처음엔 힘들었다. 냄새, 불결함 등과 함께 훗날 놀림감이 될 게 뻔한 상황이 싫었지만, 선택이 없다는 걸 알고 맡겼다. 조카처럼 바지에 실수하고 기다린 적은 없었다. 못 온다고 했을 땐 일절 먹지 않았으니깐. 지금 생각해보면 밥을 먹지 않던 조카의 행동이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다. 그땐 단순하게도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두 번의 실수를 경험하고 조카가 아빠처럼 느끼지 못하겠지만 '삼촌 아빠' 가 되고자 무던히 애썼다.
'아빠 바쁘잖아' 이해하는 아이의 말이 가슴 아프다. 바빠서 오지 못하니깐 참고 참다가 아빠를 보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저녁은 식당에 데리고 갔다. "아빠 나 또 화장실 갈게" 목소리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아빠 응가 마려워" 하고 뛰어가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부모의 품이 아직 필요한 나이인데 오히려 엄마, 아빠를 걱정하고 있다니 '응가' 하는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