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내린 후 갑자기 기온이 10도 이상 떨어졌다. 가장 추위를 느끼는 곳은 발이다. 주방에서 양말을 두 개나 신었는데도 "추워 추워" 쉼 없이 내뱉은 말이다. 특히 왼쪽 발은 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내는 혈액순환이 안돼서 그렇단다. 오른 무릎을 수술 후 왼발에 힘을 주니까 일상생활이 비틀어진 체형을 만들었단다.
난로를 틀어 놔도 찬물을 만져야 하는 일의 특성상 찬기는 늘 온몸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 같다. 똑같은 바다 생물을 다뤄도 바다에서 일하는 분들보단 좋은 환경이라고 날 달래며 낙지를 세척한다. 스스로 '우쭈쭈' 해야 일의 신명도 난다. 며칠째 발은 얼어있다. 겨울이 싫다. 아니지 추운 게 싫다.
아내가 김이 모락모락 핀 순대 국밥을 먹고 싶단다. 추울수록 따뜻한 국물이 당긴다. 리지를 데리고 국밥집을 갔다. 걸을 땐 몰랐나 보다. 아빠 신발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아빠 밖에 나올 땐 예쁜 신발 신어야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뭔 소리야?" 되물었다.
"부끄럽잖아" 그제야 알았다. 주방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걸. 웃고 넘겼다.
주방신발
"여보 내가 말했죠. 필요하냐고 물었잖아요?" 옆에서 아내가 끼어든다. 아이가 부끄럽다고 한 말에 미안한 맘 때문인지, 본인도 부끄러워서 그런지 언뜻 구분이 되지 않는다. "신발이 뭐 어떻간? 나도 깜박하고 신고 나왔나 봐" 둘러댔다.
그런 뜻이 아니란다. 일상복과 작업복을 구분하듯 밖에 나와서까지 '나 주방에서 일해요' 표시 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안다. 깜박했을 수도 있고, 발이 추워서 본능적이지 않았을까. 아내는 겨울엔 발이 추우니깐 부츠를 사준다고 했었다. 그럴 때면 늘 됐다고, 필요 없다고 기계적으로 말했다. 생각해 보니 늘 그랬다. 나중에야 왜 내 건 없냐고 묻는 것도 반복된 행동이었다.
부츠 필요 없다고 했는데 내 거 왜 샀냐고 또 성질낼 게 뻔하니깐 몰래 사 왔던 털신이다.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 때문에 발이 춥다. 털신도 충분히 따뜻하다. 눈이 발목 이상 내린 날은 별 의미 없는 털신이 된다. 아빠의 일을 창피해하지 않는데 신발만 보면 할아버지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본 건 부끄러움이 아닐 거다. 습관적으로 나오는 행동에 지적을 한 것이다. 어제도 그제도 털신을 신고 돌아다녔다. 아빠의 꾸준한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딸이 참지 않은 거다.
아빠의 일을 사랑한다. 지켜줘야 했다. 부끄럽다고 말했을 땐 '일하는 신발'이 아닌 '가족의 신발'을 원했던 것이다. 아들과 다르게 딸은 예쁜 것을 좋아한다. 식당에서 앞치마만 입던 엄마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땐 예쁘게 차려입는다. 오색찬란한 옷이 아니다. 과한 화장을 하지 않는다. 평범해도 깔끔한 옷을 입고 가게 문을 나선다. 아빠도 엄마처럼 깔끔하고 단정하길 바랐는데 늘 아빠는 편한 대로 움직여서 맘에 들지 않았을 거다.
딸은 참다가 말했다. "아빠 이건 아니야" 일을 밖까지 끌고 나올 필요가 없다는 일침이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아내 눈치는 안 봐지는데 이상하게 딸의 한마디는 지켜야 할 약속이 되어버린다. "응. 아빠가 신경 쓸게" 마지못한 대답이다.
밥만 먹어야지. 왜 싸워요.
오늘 국밥이 왠지 당기지 않더니 딸의 잔소리를 들을까 봐 그랬나 보다. 지안이는 우리 가족의 대화가 뭔지 모른다. 이놈까지 아빠한테 잔소리하지 않아서 고맙다. 옆에서 거들었다면 귀에서 피나는데 다행이다.
딸이 원하는 건 엄마가 원하는 것과 똑같다. 식당에서 충분히 아빠의 모습을 보니깐 외출할 땐 단정하게 차려입자는 말이다. 엄마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도 딸의 잔소리는 그럴 수 없다. 딸이 무서워진다. 아빠들이 왜 딸에게 꼼짝 못 하는지 의아했는데 나도 그런다.
생각난다. 아내가 가끔 시장에 나갈 때 앞치마를 차고 나가면 엄청 잔소리를 했다. 시장에 나오는 동네 아줌마들 봐라. 앞치마 찬 사람은 모두 식당일 하는 사람이다. 당신도 '나 식당 해요' 광고하고 다니냐고 성질까지 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