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골프 인형
벚꽃이 피는 4월, 실내에서 인도어 연습장으로 다시 옮겼다. 보따리장수가 오일장을 돌듯이 날씨의 변화에 따라 연습장도 바꿨다. 실내 컴퓨터 쌓아 놓은 데이터보단 아날로그 데이터가 쌓이는 것이 좋은 계절이다. 연습장에 들어서는 벚꽃길은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노곤한 오후 잠깐의 쉼조차 허락할 수 없다. 금방 화려함을 벗어던지는 벚꽃을 그냥 지나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곧 비 소식이 있다. 비가 오면 어김없이 떠나는 벚꽃 덕분에 연습장에 열심히 나갔다.
꽃구경 한번
스윙 한 번.
아름다운 것만 보니
스윙도 아름다워진다.
골프백 속에 있던 녀석들도 덩달아 흥분하는 게 느껴진다. 어서 자신도 불러달라고 시원하게 스윙을 하라며 아우성이다. 드라이버 인형은 루돌프, 우드는 아둥가, 유틸은 크롱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오늘은 정신없게 셋이 불러댄다. "나도, 나도 보고 싶단 말이야" 서로 얼굴을 들이밀며 꽃구경을 하고 싶단다. 평소엔 조용한 녀석들이다. 연습장에선 아이언과 웨지만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늘 눈인사만 하는 녀석들인데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내 마음속에도 꽃이 만개했나 보다. 다시 골프를 시작하고 가장 기분 좋은 기간이었다. 왜 그럴까.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꽃이 예쁘다는 말을 비웃었는데 언제부턴지 난 꽃 옆을 지나다니고 있었다.
오늘은 어프로치 연습을 생략한다. 늘 충분한 연습이 끝나면 상상훈련에 들어갔다. 골프 클럽을 머릿속에 그린다. 루돌프가 출동한다. 첫 홀은 par4다. 320미터 우 도그렉 홀을 상상하고 페이드를 친다. 벙커를 살짝 지나 페어웨이에 무사히 안착시킨다. "돌프 잘했어" 칭찬을 해준다. 100미터를 가볍게 펀치샷을 날려 핀에 붙인다. 첫 홀부터 버디. 훌륭한 코스 설계와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한다. 버디는 역시 첫 홀에 만끽해야 제맛이다.
par5. 두 번째 홀에 들어선다. 이번엔 드라이버를 잡지 않는다. 거꾸로 생각해 본다. 왜 이런 코스를 만들었을까. 설계자 의도를 파악하고 함정이 어딘지 관찰한다. 찾았다. 오히려 멀리 치는 게 복병이란 걸 알았다. 아둥가 출동. 우드 티샷은 신의 한 수였다. 동반자들은 모두 나보다 멀리 떨어지지만 헤져드에 퐁당하고 만다.
<관점을 바꾸면 어떻게 보느냐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도 바뀐다-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틀에 박힌 티샷 드라이버란 생각을 버리면 다른 게 보인다. 다음 샷이 더욱 편안해졌다. 우드와 드라이빙 아이언, 유틸리티 모두 사랑한다. 언제든 티샷이 될 수 있는 녀석들이다. 루돌프가 많이 서운할 수 있지만 둥가와 크롱에게도 출전 기회를 줘서 난 늘 고맙다.
자신만의 월든을 찾으라고 소로는 말했다. 자연이듯 자연이 아닌 골프 연습장에서 난 무엇을 볼까. 이곳에서 상상하며 훈련한 골프 코스는 셀 수가 없다. 연습장은 연습을 하는 곳이라지만 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닌다.
낡고 오래된 그물은 푸른 잔디로 보인다. 삭막한 펜스는 철쭉 때론 벚꽃이 된다. 거리 표시는 파와 버디를 허락할 그린이다. 이곳이 내 월든이란 생각이 든다. 벚꽃 덕분에 월든을 찾았다.
여태 헤맸는데
벚꽃 구경하다 찾았다.
나만의 아지트
동반자 알까 봐
얼른 숨는다.
여긴 모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