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건 **입니다 -
슬기로운 재수생활
21년 12월 초 대학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즈음.
어려운 불수능에 허탈한 웃음 지으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이는 점점 더 허리통증을 호소하고... 물어물어 찾아간 병원에서 좋은 얘기와 안 좋은 얘기를 동시에 들었다. 허리 휘어진 각도가 21.5도란다. "꽤 심하죠 어머니. 근데 전 25도가 넘지 않으면 약을 쓰지 않습니다. 운동으로 고쳐보죠!" '네 알겠습니다." 무거운 가방, 딱딱한 의자와 3년 내내 씨름한 결과 얻은 게 척추측만증이라니... 애써 아이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어디든 되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과 왠지 모를 불안감 사이에서 그날의 승자는 불안감이었다.
22년 1월 3일
"엄마 나 들어간다~" "그래 다녀와^^" 서로 엷게 웃었다. 학원에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덤으로 얹힌 1년이란 세월이 야속하고 마음 아파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몇 분 후 눈물을 집어넣고 난 엄마로 되돌아왔다. 앞으로의 1년(까지는 아니지만)을 계획하며.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아이의 허리통증이 나날이 심해졌다.
그날도 시간 없는 아이를 대신해 약을 받아 들고 걱정하며 사거리에 서 있었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개인 PT & 자세교정 간판. 불도저 같은 엄마의 본성으로 바로 들어가 상담을 받았다. 준비운동, 스트레칭, 근력운동에 자세교정까지 척추측만증이 심한 우리 애에게 정말 딱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일요일은 수업 없음!이라는 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운동이 좋은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수험생이기에 시간이 없어 못하고 있던 터였다. 대학 가면 운동 먼저 시켜야지 했는데 그게 미뤄졌으니...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거다. 중요한 건 수능을 무사히 치러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그래! 건강이다. 어차피 없는 시간 딸을 위해 내가 만들기로 했다.
음... 그럼 평일은 아침 7시 30분에 시작해 밤 10시에 끝나니 패스하고, 토일은 당분간 자율이용이니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 시간을 빌려야겠다 싶었다. 그 길로 다시 스포츠센터로 가 사정 얘기를 했다. "정말 죄송한데요..."로 시작한 나의 부탁은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로 마무리 지어졌다.
자 이젠 아이를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오는 길, 아이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시간 없어 안 된다는... '아니 엄마 위한 거니? 널 위한 거지! 말 좀 들어라' 마구 튀어나올 것 같은 거친 감정을 워워~누르며 부드럽게 한 마디 했다. "우리 일 년 뒤에 건강하게 웃자"
"안녕하세요 회원님~^^"
어느새 나는 그 센터의 회원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혼자는 절대 안 간다 하여 같이 등록했기 때문.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둥근 등이 조금씩 펴지고 플랭크자세로 오래 버티기 했으며 러닝머신에서 적잖이 뛰고 있는 서로를 보며 웃고 또 웃었다. 그래 인생은 이렇게 한 발씩 나아가는 거란다.
강사님의 말씀이 맞았다. 자세가 좋아지면 집중력도 향상된다는 잔. 소. 리. 가 말이다.
몇 달 지나니 자세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8월 초 엑스레이를 찍으니 17.5도.(지금은 12.5도)
와우~진짜 나아지는구나! 몸소 체험하더니만 그때부터 아이는 더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9월 모의고사와 수능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듯했다.
뭐 그렇다고 성적이 확 올랐냐면 그건 아니다;;~ 그 얘긴 다음 편에~
수능이 다가올수록 강의실엔 파스냄새가 진동하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조퇴증을 끊어 정형외과와 한의원으로 향했다. 저마다 몸의 통증과 마음의 불안을 안고서.
운동을 한다고 몸이 전혀 안 아픈 건 아니다. 하지만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출 수 있고 마음의 긴장감을 덜 수 있는 건 확실하다.
수능은 생각보다 길고 긴 싸움이기에 플랜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체력관리.
딸은 토일에 2번 강사님께 수업을 받고 화목엔 집에 와 10시 30분부터 1시간 정도 나와 개인운동을 했다. 그리고 월수금은 같은 시간 40분 정도 동네를 산책했다. 밤마다 이런 시간이 필요한 건 하루의 스트레스를 덜어내기 위함이었다.
척추측만증이 아니어도 뭐든 운동은 꼭 해야 한다. 수영도 좋고 농구도 좋다. 시간을 쓰면서 시간을 버는 일을 계획하는 것, 그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야 완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살다 보니 엎친 데 덮친 격인 때도 있더라. 그걸 버티니 금상첨화일 때도 있고.
그게 우리네 인생인가 보다.
p.s. 재수기간 : 슬픔 - 화 - 좌절 - 인내, 즉 쓴맛을 맛보는 사춘기 보다 좀 쎈! 성장기
그래도 같이 얘기 나누면 고민이나 긴장이 좀 누그러지더군요~^^
* 오늘의 단어는 운동 うんどう(우ㄴ도~)입니다~